빌려준 5억 안 갚자 흉기로 31회 찔러 살해
"반성한다"던 가해자, 편지에는 "찾아가겠다"
검찰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엄벌 필요"
지난해 9월 중순, 경북 경주에 있는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의 집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겉봉에는 경주구치소에서 수감 중인 가해자 A(62)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투를 열어 편지글을 읽은 피해자 B(67)씨 유족들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우선 재판장에게 나를 용서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기다려라” “그럼 나중에 감사 인사 하러 가겠다” “국내, 해외 어디로 이사 가든 반드시 찾아갈 수 있다”
추신에는 편지 수취인이자 A씨가 살해한 피해자 장남과 며느리 부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난 (두 사람의) 주민번호를 알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편지글은 끝났다. A씨가 보낸 또 다른 편지에는 “심부름센터 등 흥신소를 이용해 찾아가겠다”는 협박글이 있었다. 이 같은 협박 편지는 총 3차례 배달됐다. A씨와 살해된 B씨에겐 어떤 악연(惡緣)이 있었을까.
◇흉기에 수십 차례 찔린 요양원장
지난 14일 대구지법 형사12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A씨는 지난해 7월 28일 경북 경주의 한 요양원 입구에서 요양원장 B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비극은 B원장이 A씨에게 거액을 빌리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5년 B원장은 요양원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요양원 입소자의 아들인 A씨에게 총 5억 7300만원을 빌렸다. A씨가 아버지 사망 후 상속 받은 유산이었다.
A씨는 B원장에게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요양원 직원으로 고용할 것을 내걸었다. 매달 이자와 월급을 각각 지급해 달라고 했다. 원금은 2020년 1월까지 갚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B 원장은 A씨에게 이자와 월급을 제 때 지급하지 못했다. B원장 유족 측은 “여전히 경영 사정이 어려워 돈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며 “채용된 A씨가 태업을 일삼았고, 요양원에 봉사하러 온 학생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2~3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요양원 경영이 더욱 어려워졌다. A씨는 B원장이 돈을 갚을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6월, A씨는 B원장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사건 당일 오전, A씨는 요양원 앞에 차를 주차하고 B원장을 기다렸다. B원장이 요양원 출입문을 열고 출근하자 “요양원 통장 내역과 입소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B원장이 이를 무시하자 A씨는 품에 감춰둔 가스총을 발사한 뒤 흉기를 꺼내 B원장을 공격했다.
B원장이 비틀거리며 피하려 했지만, 공격은 계속됐다. A씨가 양손에 쥔 흉기 두 자루로 B원장을 찌른 횟수는 무려 31차례. 공격은 얼굴과 목 등에 집중됐다. A씨는 재판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한 번 찌른 뒤부턴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까지 밟았던 A씨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