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대전 후 일본은 심각한 식량부족에 시달림
당시 재일조선인들이 구워먹었던 소내장등은
전쟁 전 일본에서 잘 안먹던것들
근데 재일조선인들이 먹던걸 보고 식량부족이던 일본인들이
고기냄새에 눈돌아가 따라 먹기시작함
그걸 본 재일조선인들은 그 동안 일본에서 보통 버리거나 비료로 썼던
소의 내장을 구워서 내놓는 장사를 시작하고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
하지만 당시에 이런가게들은 야키니쿠집이라고 부르지않고
조선요리점, 호르몬집 으로 간판을 달고 장사함
야키니쿠와 야키니쿠집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한건
쇼와 40년대(1965~1974) 이후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한국과 북한의 정치적대립에 있음
원래 하나의 국가였던 조선은 제 2 차 세계 대전 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며.
각각 남쪽으로 한국과 북쪽에 북한이라는 두 나라로 나누어져 버림
쇼와40년(1965년) 한국과 일본은 관계 정상화와 경제 협력을 동의한
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했다.
이 사건은 재일 한국 · 조선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됨
한국을 지지하는곳은 조선요리점에서 한국요리점으로
북한을 지지하는곳은 조선요리점 그대로 남게되었는데
그동안 이용했던 일본 손님들이 혼란스러워함
그러자 손님들의 혼란을 막기위해서 어떻게할까 가게들이 고민하다
한국어로 불에 구운고기를 불고기라고 하는것에 착안해
그대로 일본어로 야키니쿠로 만듬
그러해서 일본에서 잘 쓰이지않던 야키니쿠란 말이 순식간에 퍼지게됨
그렇기에 쇼와30년대(1955~1964) 전화번호부를 보면
야키니쿠에 해당하는 항목이 아직없음
남과 북으로 분단 된 정치적 대립에 직면한
재일 한국 · 조선인의 고뇌의 산물로 탄생 한 것이
'야키니쿠'라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