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는 남자를 찍은 이 사진은 1950년대 중반 미국의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다.
얼핏보기에 흡족해보이는 미소를 만면에 띄우는 이 남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50년대 중반 당시 뉴욕
그당시 뉴욕은 무려 16년동안이나 계속된 폭탄테러의 위협에 시달려왔다.
극장, 영화사, 지하철 터미널, 도서관등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공공장소에 16년간 무려 33개의 폭탄이 설치되었고,
그 중 22개는 범인의 의도대로 폭발하였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22차례의 폭탄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15명의 부상자만 나왔다.
테러범의 범죄수법은 날이 갈수록 더욱 영악해져갔고, 경찰서에 자신을 '미친 폭탄마'라고 소개하며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내용은 경찰들을 조롱하는 내용과 다음에 폭탄이 설치될 곳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의 위협으로 당시 뉴욕의 경찰관들은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하루에도 몇번씩 사람들을 대피시켰고,
그로인해 테러범이 원하던대로 도시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던 와중 경찰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는데,
바로 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이 모두 전력회사 '콘에디슨'의 관리하에 있던 시설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용의자의 신상을 콘에디슨에 원한관계가 있는 자 들로 경찰들은 수사의 방향을 좁혀갔다.
하지만 거듭된 수사끝에도 마땅한 원한관계의 용의자는 발견하지 못했고 또 다시 수사는 난황을 겪었다.
하지만 1957년이 되던 해에 범인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경찰은
저명한 정신분석의 제임스 A. 브러셀 박사를 초빙하여 그때까지도 계속 날아오던 범인의 편지를 분석요청했다.
브러셀 박사는 범인이 보내온 편지를 검토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범인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가진 중증 편집증환자이며,
외국에서 태어났으며 코네티컷에 거주하고 있고 중년의 뚱뚱한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반신반의 했지만 박사의 의견을 토대로 경찰들은 집중적으로 코네티컷에서 살고있었던 모든 콘에디슨 직원들을 재수사하였고,
그 결과 1940년에 콘에디슨에서 근무하던 '조지 메데스키'란 남자의 기록을 발견했고,
메데스키의 필체를 범인의 필체와 대조한 결과 놀랍게도 일치했다.
경찰은 지체없이 코네티컷의 워터베리로 출동하여 그를 체포하였고,
그의 외모는 놀랍게도 브러셀 박사가 이야기했던 것과 놀랍게도 닮아있었다.
메데스키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경찰의 인도하에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6년간 뉴욕을 두렵게 했던 '미친 폭탄마'의 사진을 기록하려 했던
뉴욕 데일리 뉴스소속 기자 주드 멜멘이 그의 모습을 곧바로 셔터에 담았다.
미소를 짓는 메데스키의 얼굴은 특보로 뉴욕 전역에 알려졌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 메데스키는 자신의 범죄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는 정신병자로 낙인찍혔고
90세의 나이로 사망할때까지 뉴욕주립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냈다.
메데스키의 범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브러셀 박사의 분석은 역사상 최초의 범죄 프로파일링으로 알려져 있다.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