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윤씨는 이춘재의 진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나.
A : 당연하다. 그 애는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부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왔다. 청주교도소에서 윤씨를 아는 수형자와 직원들 사이에서는 ‘무죄인데 억울하게 들어온 애’로 통한다. 이춘재가 진범으로 밝혀진 지난달 19일, 윤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뉴스 보셨어요’ 하더라. 이번에는 정말로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Q : 당시 윤씨는 '내가 죽였다'고 경찰에서 자백을 했다.
A : 고문을 당해서 허위 자백을 한 거다. 잠을 재우지 않고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는 식으로 윤씨가 이야기를 했다. 자백을 안하면 죽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그 당시 화성 사건 수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가혹 수사로 죽거나 자살한 사람도 있다. 지금도 그 애는 자신을 고문한 형사와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항소심에서 고문 사실을 알렸지만 증거가 없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Q : 윤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건 자백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 현장에서 윤씨의 체모가 발견됐다.
A : 나도 그 부분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교도관이 마치 못 믿는다는 양 캐물으면 재소자는 마음을 다친다.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당시 체모를 분석하는 기술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DNA 검사도 아니고 정말 그게 100% 확실한 증거였냐는 것이다.
Q : 만일 윤씨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면, 왜 하필 그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A : 애가 순진하고 어벙벙하니까 이용당한 거라 생각한다. 윤씨는 고아에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돈 없고 빽 없으니 변호인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어떻게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몰랐다. 가혹 행위를 당해도 경찰에 달려가 ‘왜 우리 애 고문시키냐’며 난리쳐줄 부모가 없는 거다.
Q : 교도소 내에서 윤씨는 어떻게 지냈나.
A : 대단한 친구다. 술담배도 일체 안하고 돈도 악착같이 벌어서 모조리 저금했다. 아는 게 없으니까 봉제 기술을 배웠는데 12시간씩 교대 근무하고도 불만 한 마디 없었다. 오히려 잔업 없어서 돈 덜 버는 걸 걱정했다. 얘가 누나들 수술비랑 조카들 학자금도 대줬다. 애가 성실하고 착하니까 교도소 내의 다른 재소자들도 윤씨에게 먹을 거 사주고 많이 도와줬다. 그러니까 모범수로 분류돼서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수 있었던 거다.
Q : 왜 그동안은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나.
A : 왜 준비를 안 했겠나. 계속 재심을 신청하려고 알아봤다. 2003년 무죄를 주장한 인터뷰 역시 재심 준비 과정에서 하게 된 거다. 하지만 ‘진범이 특정되지 않으면 재심 신청해도 뒤집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했다. 변호사를 쉽사리 선임할 돈도 없고 말이다.
Q : 지금 윤씨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A : 지방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 아직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 신상이 이미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에 ‘야 너 19년 6개월 동안 수감됐었으니까 무죄 인정받으면 형사보상금 두둑히 받을 거야’ 위로했더니 윤씨가 ‘형님, 저는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거지 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 조용히 변호사를 구하는 중이다.
당시 담당새끼들 다 투옥시키고 시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