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때는 한글과 천자문을 떼고,
만 3세에 미적분을 풀었으며,
이듬해 한양대학교 과학교육과에 입학했었죠.
그리고 만 8세에는 홀로 미국유학을 떠나 콜로라도대학 대학원에서 '핵/열물리학’ 석·박사 과정을 이수했고
만 10세에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연구원이 되었죠.
1967년 10월, 만 4세의 김웅용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일본 후지TV의 ‘만국 깜짝쇼’에 초청되었기 때문인데요.
고운 한복을 입고 단정한 가르마를 한 채 낯선 일본의 방송국에 들어선 그는
동경대 수학과 야노 켄타로 교수가 내는 미적분문제를 단숨에 풀어내려갔어요.
야노 교수가 정답이라 외치는 순간 스튜디오 안
300여명의 방청객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탄성을 터뜨렸구요.
이 날 방송은 35%라는 높은 시청률로 그해
일본의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 10위 안에 드는 기록을 세웠고
일본 전체는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년에게 열광했어요.
12살의 김웅용은 단지 IQ가 아주 많이 높다(?)는 이유로 유년시절에 놀이 대신 NASA에서 공식을 푸는 일을 해야만 했어요. 연구원에서 동료들과도 심리적 장벽이 있었던 그는 지독히 외로운 사춘기를 겪으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 행복'을 위해 돌연 입국하고 말지요.
돌연입국하여 검정고시를 보고, 지방의 한 국립대학의 평범한 대학생이 되려는 그에게
언론은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한국에서의 달라진 삶 속에서 그는 행복했다고 말합니닼
공식 속에 파묻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에게 평범하게 동아리 MT를 즐기며 통기타를 치고
막걸리를 마시는 대학생의 삶은 흥미로웠고 다채로웠을 것입니다.
지금은 신한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