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유명 대학 대학원생인 A씨에게 2018년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고백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대학원 동료였던 그가 이 정도까지 더러운 행동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동료 김모(남성)씨는 A씨가 마시는 커피 등에 정액과 가래침을 탔다. 확인된 것만 54회. 그리고 A씨가 그걸 마실 때까지 지켜보고, 날짜와 횟수를 일기장에 남겼다.
김씨는 이 일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최근 있었던 2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았다.
1⋅2심 재판 과정에 드러난 그의 집착은 충격적이었다. 재판부조차 "범행이 엽기적이고, 구토가 나올 정도로 역겹다"고 판결문에 적을 정도였다.
김씨가 처음 범행을 마음먹은 건 지난 201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 여성 A씨가 김씨의 사랑 고백을 거절한 뒤였다. 김씨는 마음을 접는 대신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때부터 지난해 1월, 들키기 전까지 그는 범행을 이어갔다.
김씨가 '복수'로 택한 방법은 A씨가 마실 커피에 정액과 가래침을 몰래 섞는 방식이었다. 가끔은 변비약도 타고 심지어 어느 날은 최음제도 몰래 탔다. 그리고 A씨가 그걸 마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여성인 A씨가 준 커피를 마시고 괴로워하면 김씨는 그걸 보고 즐거워했다.
이런 괴롭힘은 10개월간 54회에 걸쳐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김씨의 범행은 대범해졌다. 커피뿐만 아니라 A씨가 쓰는 칫솔과 립스틱, 틴트에도 정액을 묻혔다.
김씨와 피해여성 A씨는 같은 대학원 연구소 소속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10월 다른 연구소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열린 학술회에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호텔 옆 방에서 묵었다. 김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A씨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베란다를 넘어가 A씨 방에 침입했다. 방에서 A씨 속옷을 훔쳐 나왔다.
피해 여성 A씨의 노트북과 태블릿PC는 지난 10개월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고장과 도난이 잦았다. A씨는 자신이 잘못 관리한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 김씨가 벌인 일이었다. 김씨는 A씨 노트북 등을 훔쳐 그 안에 담긴 A씨의 사적인 사진들을 별도로 저장했다. 그는 이 사진들을 남몰래 보면서 '나쁜 상상'을 했다고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런 김씨의 범행이 들통난 건 그가 꼼꼼하게 적은 메모를 다른 동료가 우연히 보면서다. 그는 지난 10개월 동안 모든 범행에 대해 구체적인 날짜와 종류, 횟수 등을 연구실 공용 PC에 세세하게 남겼다. 이를 본 동료가 경찰에 김씨를 신고했고, 그렇게 김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였던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권기철)는 지난 6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고백을 거절당한 후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통해 잘못된 쾌감을 느끼며 오랜 기간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는 (휴대전화, 노트북 분실 등) 반복되어 일어난 나쁜 일들이 자신의 탓인 줄 알고 있었으나 피고인으로 인한 것임을 뒤늦게 알고 연구 활동은 물론 일상적인 인간관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며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했다.
2심을 맡은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 역시 모든 사실관계를 인정했지만, 형량을 줄여줬다. 지난달 11일 징역 3년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1심 형량보다는 1년을 깎았다. 그 근거로는 "대법원 양형기준보다 1심 형량이 과하고, 피고인이 매우 속죄하고 있으며,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피고인의 범행이 엽기적이고, 구토가 나올 정도로 역겨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이런 식의 감정 표현을 판결문에 적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하 더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