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 수감된 마약사범들은 호송차량을 타고 검찰청에 출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소위 ‘비둘기장’으로 불리는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검사실 호출이 오는 순서대로 청사로 올라가 조사를 받는다. 점심식사는 구치소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대신한다. 조사받으러 온 마약사범들에게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이 제공될 리는 없다.
오후 4시가 지나도 구치소로 돌아오지 않는 마약사범들도 있다. 이들은 속칭 ‘야당’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경찰이나 검찰이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마약 투약자 및 판매책 등에 대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수집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려 일종의 ‘연결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야당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약으로 이미 형을 살고 나온 ‘야당’들은 검찰청사로 직접 들어가 검찰 수사관과 ‘커피 한잔’하며 수사 정보를 넘기기도 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검찰 공적조서’라는 대가가 뒤따른다.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기소된 ㄱ씨는 1심 재판 중 ‘야당’을 통해 경찰에 다른 마약 알선자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자신과 또 다른 공범 ㄴ씨의 공적조서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에 들어갔어야 할 공적조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ㄱ씨는 야당이 빼돌렸을 것으로 짐작했다. ㄱ씨가 받아야 했을 공적조서를 돈을 받고 다른 마약사범에게 팔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ㄱ씨의 제보는 실제 해당 경찰의 실적으로 올라갔다. ㄱ씨가 제보한 대로 마약 알선사범이 경찰에게 검거됐기 때문이다. ㄱ씨는 “내가 천하의 나쁜 XX가 돼 가면서 공범을 불었는데 정작 그 야당과 경찰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됐다”고 했다. 야당은 돈을 벌고, 경찰은 실적을 쌓았단 얘기다. 마약투약 누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ㄱ씨는 감형 없이 형을 마친 뒤 출소했다.
마약수사 현장에서 ‘야당’의 영향력
대부분의 마약수사는 ‘야당’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실제 마약수사 현장에서 ‘야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마약판매 및 투약전과가 있는 마약사범이 검거돼 구치소에 수감되면 2~3일 안에 야당으로부터 “네가 갖고 있는 정보를 넘기라”는 편지가 도착할 정도라는 게 이들의 말이다. 일부 야당들은 수사기관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수감자 정보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마약판매 전과가 있는 한 마약사범은 지난해 강원도의 한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6개 경찰서 형사가 수사접견 요청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수사기관이 알아서 야당을 보호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도 결국 정보가 야당을 거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 <사생결단>은 수사기관과 야당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 속 마약계 형사(황정민 분)는 부산 일대 마약판매책이자 ‘야당’(류승범 분)의 마약판매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다른 지역의 마약판매 정보 등을 넘겨받고, 실적을 쌓는다. 또 야당을 이용해 마약계 거물을 잡아들이려 함정수사를 벌이다 실패로 돌아가자 되레 야당을 잡아들이기까지 한다. 영화 속에는 경찰이 야당이나 정보원을 이용해 마약수사를 하듯 야당 역시 수사기관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현실이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부제는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두 열혈악당의 생존법칙’이다.
현실에서도 수사기관과 야당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작전’을 짜는 경우가 있다. “한 야당은 필로폰 1㎏을 들여오다가 잡히니까 자기 구형량을 깎으려고 10㎏짜리 밀반입 작전을 만들기도 했다. ‘지게꾼(마약운반책을 일컫는 은어)’ 한 명을 섭외해서 중국에 잠시 다녀오라고 한 뒤 마약을 들고 들어오게 하는 거다. 그리고 그 정보를 수사관에게 주면 지게꾼은 인천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잡힌다. (마약이) 단 1㎏이라도 나오면 그걸로 수사관은 실적을 쌓고, 야당은 형을 깎아서 나오는 식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범죄를 숨기거나 축소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짜고 또 다른 범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함정수사’이자 ‘부당거래’다.
현재까지 야당의 실체가 외부로 드러난 적은 없다. 그러나 취재결과 소위 ‘텐텐클럽(마약 전과 10범 이상)’ 사범들 사이에 공유되는 야당 정보는 존재했다.
수사기관과 ‘야당’의 합동작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물급으로 활동하는 야당은 부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남모씨로 알려져 있다. 이쪽 사정에 밝은 한 마약사범은 “야당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마약도 판다”면서 “그런데 남OO은 기소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임모씨도 부산에서 활동하는 야당이다. 대구 실세 야당은 이모씨, 성남 실세는 정모씨, 서울·경기 실세는 권모씨 등으로 분류된다. 서울에서 가장 크게 활동했던 야당은 서모씨로 현재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이들은 공적조서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을 일종의 ‘직업’처럼 하기도 한다. 이들이 다루는 정보 가운데 가장 값어치 나가는 정보는 마약 밀반입 정보다. 그다음이 ‘공무원 비리’ 정보다. 경찰 비리는 2000만원부터 시작한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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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기사전문 : https://news.v.daum.net/v/20200111170946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