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라는 표현을 들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1988년이 떠오르지만, 놀랍게도 1988년 이전에도 쌍팔년도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이 있음.
육해공 국군과의 대화 (5) 병영은 사회진출의 도장
자부와 보람의 「황금기」
- 경향신문 1976년 01월 30일
허정렬 육군상사(51년 1월 입대 선봉대 주임상사) : "부대내의 말이었지만 「쌍팔년도」 (50년대)까지만해도 군대는 배고프고 춥고 잡일로 고달팠지요. 오늘의 내무반, 식사, 피복, 휴게실등 사병복지는 옛날과는 비교도 안되게 효율적이고 편안하고 배부릅니다. 이런 시설은 전방이 더 훌륭합니다. 한마디로 요즈음 사병들은 먹고 자고 입는데 대한 불평은 없읍니다.
당연히 미래의 1988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는걸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지. 도대체 왜 50년대를 쌍팔년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1995년에 발행된 경향신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됨.
카피라이터 윤준호의 광고 사랑 (18)
'추억'이 잘 팔린다
- 경향신문 1995년 10월 04일
광복 50주년이라서일까. 옛일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때 그시절」 식의 영상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그렇고, 신문 잡지의 「한국 50년」 따위의 기획물들이 그런 것들이다. 광고 하나도 그런게 눈에 띈다. 그야말로 쌍팔년도(88년이라는 뜻인데 단기 4288년, 즉 1955년을 의미한다)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는 구두광고다.
단기는 요즘에 들어서는 쓰지도 않고, 심지어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제법 잘 알려진 연호였음. 우리 가족이 딱 1999년에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도어락을 달았는데, 그때가 단기로 4332년이라서 비밀번호를 4332로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네.
아무튼 이쯤에서 "그러니까 쌍팔년도는 1955년을 의미한답니다." 라고 마무리를 지으면 아주 깔끔하겠지만, 문제는 이미 1998년부터 쌍팔년도라는 표현의 뜻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1988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는 사실임.
'세상의 때'빼고 '마음의 광'내는 목욕탕속의 두 시인
- 동아일보 1998년 01월 19일
알몸에는 계급장을 달 수 없다. 두둑한 지갑을 넣을 주머니도 없다. 겉치레는 다 벗어야 '입욕가(入浴可)'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면 퇴적층처럼 쌓인 군살과 탄력잃은 피부가 지나온 시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스스로에게 '683세대' 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시인 이명찬.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이제 30대가 된 그는 '피둥피둥한 몸피에 아랫배가 불거진' 거울 앞의 사내를 보며 '앞줄에 내몰릴까 두려워/대열의 뒤에서 몇개의 짱돌을 던졌던' 그 어정쩡한 20대에 이미 오늘의 나는 잉태된 것이었다고 자책한다.
'...때문에 나는 깨어지지 않았다/쌍팔년도 다 지나 대망의 구십년대 이르기까지/그리고 서른을 넘길때까지/그것은 언제나 생피나는 현실이 아니라/언제나 적당한 모험, /차라리 은밀한 내통일 뿐이었으므로...' ('나의 모험' 중)
설마 1960년대에 태어난 시인이 "쌍팔년도 다 지나 대망의 구십년대 이르기까지" 라고 자신의 일생을 노래하는데 1955년대를 지칭하기 위해 쌍팔년도라는 말을 썼을리는 없음. 여기서는 쌍팔년도가 운동권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1980년대를 지칭했다고 보는게 당연히 합리적이지.
결국 쌍팔년도는 단기를 기준으로 삼아 1950년대를 가르키는 말로 쓰이던 표현이었지만, 점차 단기라는 연호가 사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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