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기억하나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해 겨울에 장명석 MBC 파리 특파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와 독일에있는 차범근 선배부부가 함께 자리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어서 방영하고 싶다는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차범근 선배 때문에 내가 유럽에 진출한 것이고, 유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내의 팬들에게도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때쯤에는 유럽에 김진국 선배를 비롯해서 박상인,김민혜,박종원 등이
진출해 있어서 유럽무대에서의 한국 축구 위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장 특파원이 차 선배가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는 게 어떻게느냐고 어렵게 말했다.
에인트호벤에서 500km 남진핫 거리였다.
솔직히 말해서중간 어디쯤에서 만나면 좋겠지만 후배가 가는것이 도리라고 생각에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차 선배쪽과 먼저 통화하여 내가 그쪽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해놓고 내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내가 자존심 때문에 가기 싫다고 하면 어찌나 걱정하던 차에 내가 쉽게 응락하자 장 특파원은 그제서야 걱정을 덜었다.
"그런데 제가 네덜란드에서 여행을 안 다녀봐서 길을 잘 몰라 그게 걱정입니다"
"잘됐네요 제가 에인트호벤으로 가서 같이 프랑크푸르트로 가면 좋겠습니다"
장특파원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 특파원은 토요일에 에인트호벤으로 와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새벽 출발하여 정오에 차 선배를 만나기로 스케쥴을 짰다.
약속대로 자기 아내를 데리고 토요일 오후에 도작했다.
출장길이지만 아내와 여행하는 것도 좋고,나와 차 선배 부부가 함께 만나는 것이므로 자기도 아내를 동행한것이다.
장 특파원은 기분이 좋은지 작은 선물까지 사가지고 왔다. 마침 이날 경기가있었는데 골을 기록한 터라 나도 기분이 좋았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맥주가지 곁들였다.
이튿날 새벽에 출발하려고 일어났더니 밤새 눈이 내려 수북하게 쌓여 운전할 일이 걱정이였으나 이미 약속한터라
조심조심 운전하며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이때 아내는 임신을 해서 배가 많이 불렀다.
장거리 여행이 안좋을수도있지만 차 선배 부부를 만난다는 기쁨에 기꺼이 함께 가기로 했다.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몇 번 전화로 인사한적은 있지만 유럽에서 직접 만난적은 없다.
지도를보는데 익숙한 장 특파원의 차가 앞에 가고 내가 그뒤를 따랐다.
눈이 고생했어도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인 프랑크 푸르트 공원앞에 도착할수있었다.
섭외한 촬영 팀은 벌써 나와있는데 차범근 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장특파원에게 뭔가 속삭이는 촬영팀 책임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장 특파원이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오랫동안 통화하더니
내게로 왔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차 선수가 약속을 취소했는데 왜왔느냐고 하네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장 특파원 설명에 따르면,처음에 만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맞지만 곧 그 약속을 취소한다고 파리 사무실의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는것이다.
그러나 장 특파원은 이미 네덜란드로 떠난 뒤로 사무실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파리 사무실로 전화했지만 일요일이어서 아무도 없었다.
난감했다.
"우리 부부가 500km를 달려서 도착했다고 말했나요?"
"그럼요 그래도 그냥 쉬겠답니다"
섭섭했다. 대표팀에서 수년간 한솥밥을 먹었고, 무슨 원수진 일도없는데...
시간이 안되면 차라도 한잔 할수있는것 아닌가.
"바꿔달라는 소리도 없었나요?"
장 특파원은 대답없이 민망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나도그렇고 내아내도,여기까지 동행한 특파원의 아내도 아무말하지 못했다.
만삭의 아내에게 미안했다. 차선배에게 이런 대접밖에 못받는 남편...
"걱정하지마세요 우선 밥이나 먹고 되돌아가지요 뭐."
부러 명랑한척했다.
고려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한국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다들 맛이고뭐고 음미할 마음이 아니었다.
이튿날훈련이 있으므로 바로 되돌아가야했다.
"제가 길을 잘 모르니깐 고속도로 타는곳까지만 안내바랍니다"
장 특파원은 미안해서 어쩔줄 몰랐다.그는 지갑에서 500마르크를 꺼내어 내게 밀었다.
"죄송해서 그럽니다.이거라도 제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양하다가 장특파원이 더 미안해할까봐 받았다.
나도 아내도 아무말 하지않았다. 국경을 넘을 무렵 차창을 열고 차선배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잘게 찢어버렸다.
2014 허정무 자서전중
커뮤니케이션 문제고만..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었으면서 출발전에 선배에게 먼저 전화도 않고 그냥 출발했다고? 난 이해 안되는데..
그.. 기자가 특종 잡으려고 차감독 인터뷰 따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억지로 허감독 5백키로 움직이게 했는지 어찌아나요..
그당시 기자들 습성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거 참.. 그렇게 억지로라도.. 차감독을 까고 싶을까..
허정무 선수로 뛸때 직관도 했었지만.. 이정도로 인물밖에 안되었구만...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