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대인(大人)과 왕은 몰래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논의하였는데, 일이 새어나갔다. [연개]소문은 부병(部兵)을 모두 모아놓고 마치 군대를 사열할 것처럼 꾸몄다. 이와 함께 성 남쪽에다가 술과 안주를 성대히 차려 두고, 여러 대신(大臣)들을 불러 함께 [사열식을] 보자고 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모두 살해하니, 모두 1백여 명이었다. [그리고] 말을 달려 궁궐로 들어가 왕을 시해하고, [왕의 시신을] 잘라 여러 토막으로 내고 도랑에 버렸다. - 삼국사기
정미(21일)에 대부들을 난파군(難波郡;나니하노코호리)에 보내어, 고구려국이 조공한 금, 은, 동과 그 헌상물을 점검 시켰다. 고구려의 사인은 바치는 일이 끝나자 “작년 6월에 제왕자(弟王子) 가 죽었습니다. 가을 9월 에는 대신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연개소문)가 대왕을 죽이고 아울러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등 180여 명을 살해 하였으며, 제왕자의 아들 을 왕으로 삼고 동성(同姓)인 도수류금류(都須流金流) 를 대신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 일본서기
고대 사회의 귀족 = 최상위 엘리트.
그럼 그 당시 고구려의 정세는?
24년(641)에 황제는 우리 태자가 입조하였으므로 직방낭중(職方郞中) 진대덕(陳大德)을 보내어 답례하였다. 진대덕이 국경에 들어와서 이르는 성읍마다 관리들에게 비단을 후하게 주고 말하기를 “내가 산수를 좋아해서 이곳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있으면 보고 싶다.”고 하였다. 관리들은 그를 인도하기를 좋아하여 여러 곳으로 놀러 돌아다니며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지리의 세세한 곳을 다 알게 되었다 - 삼국사기
고구려에 관심 없던 당고조 이연에서 고구려를 정복하겠다는 당태종 이세민이 황제가 되면서 고구려를 노리던 시기.
그런데 인재 하나가 중요한때 연개소문이 귀족 백명을 죽임.
물론 그들 중 능력이 없는 존재도 있을수있지만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존재도 있을 수 있음.
어찌됬든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엘리트들이 싸그리 죽었으니 과연 나라가 돌아갈수있을까?
괜히 1차 고당전쟁때 고구려 개털렸던게 우연이였을까? 주필산 전투를 말아먹은 고연수 같은 놈이 사령관에 있는게 우연이였을까?
진짜 안시성주가 한반도 역사에 길이남을 우주방어를 해서 다행이지. 아니였으면 고구려 멸망은 몇년은 더욱 앞당겨졌을거임
물론 수백년 뒤 진짜 개병신들인 최씨에 비하면 연개소문도 당나라를 막기 위해서 노력함. 하지만 보내는 군대 대부분이 당태종에게 발림
거기에 지 아들들과 친족들로 귀족들의 빈자리를 메꾸었는데 돌아온것은 고구려의 이완용이 된 장남 연남생. 고구려 남부의 12성 700호를 신라의 바친 동생 연정토......
결론적으로 이 양반이 고구려 멸망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게 이유 없는 평가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