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머리카락을 가발 공장에 팔기 위해 줄을 선 여성들의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같이 온 어머니가 달래고 있다.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19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다섯이 태어나면 몸이 약한 아이는 첫 돌을 채 넘기지 못하던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중부지방에서 수해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가장과, 갓난 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교복 바지를 걷어올리고 삽을 들어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당시 준 엘리트층이였던 고등학생들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한국 관료들의 공손한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갖춰 입은 파독 간호사들이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만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만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삼천만이 힘을 합쳐 역사를 바꾸자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국군의 월남전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조선경비사관학교,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패용하고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월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시민들과 장병들의 어머니들이 언덕 위에서 열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수송 열차가 지나는 역, 마을 어귀마다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청룡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김종세 대위: '적들에게 우리 대한 국군의 전투력과 기백을 보여주겠습니다.'
대한뉴스 박무환 기자: '삼천만의 마음이 국군과 함께 합니다.
호국영령들이 대한의 남아들을 수호할 것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항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10~20대의 여공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의 힘깨나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국군 장성들 월남전선 방문.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진지한 모습의 한국 해병대' - 미국 UPI 뉴스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 연대 병력과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월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 대학생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