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사랑받으며 가벼운 감기나 두통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에 두루 쓰였던 '무미야'.
당시 집집마다 거실에 비상 상비약으로 한 병씩 놓여있을 정도였고
약이 다 떨어지면 불안해서 먼 곳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구해 놓아야 했던 약이었음.
그런데 E.A.Wallis Budge라는 사람이 쓴 <Mummy>라는 책에 나온 이 약의 진실은...
보통 미라를 만들 때는 붕대로 몸을 단단히 싸맸는데,
그 때 사용됐던 붕대에 이집트 근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약재인 '몰약'이 다량 사용되었음.
근데 유럽에서는 붕대는 물론이고 시신까지 모조리 갈아서 약으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름.
사실 미라를 약으로 사용한 기록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등 생각보다 꽤 보편적이었는데,
중세에 접어들면서 무미야에 대한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가격이 폭등함.
나중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원재료인 몰약보다 미라로 만든 무미야의 약값이 더 비싼 지경이 됨.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의 원인은 당시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이었는데
미라가 지닌 영혼불멸의 신비한 이미지에 반한 사람들은 단순한 약재인 몰약보다 미라로 만든
무미야가 더 병에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무미야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집트 미라들은 더 많이 필요해졌고,
심지어는 미라를 유통해주는 전문 브로커들까지 등장하여 해마다 수백 톤에 달하는
이집트 미라를 유럽으로 수입해왔으나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음.
그들은 급기야 이집트로 도굴단을 보내거나 밀매까지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데...
미라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브로커들은 이집트와 가까운 곳 중 몰약나무와 미라 풍습이 있는 곳을 계속 찾아 다녔으며
수색에 수색을 거듭하여 아프리카 인근 해안에 있는 테네리페 섬까지 찾아가게 됨.
그런데 이 섬의 동굴엔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구에 달하는 미라를 매장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음.
그 소식을 듣게 된 발굴단들이 앞 다투어 섬을 찾아와 동굴들을 들쑤시며 미라들을 발굴해 유럽으로 공급했고,
결국 마지막엔 섬에 미라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버림...
심지어 유럽으로 공급할 미라가 더 이상 없어지자 브로커들은 이번엔 버려진 시신들을 미라로 속여서 공급하기 시작,
시신들의 출처는 죄인에서 병자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비위생적인 시신들이었음.
1564년 프랑스 명의로 불렸던 의사 라퐁텐은 무미야의 약효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했고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당시 가장 컸던 미라 중개거래소를 찾아가서 유럽으로 공급되는 미라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죄인들과 전염병에 걸린 병자들의 시신으로 미라를 만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됨...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라퐁텐이 무미야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약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무미야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무려 약 300년 동안이라는 가장 긴 기간 동안 유럽에서 최고의 약으로 사랑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