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6년 8월 14날 벌어진 사건
유명했던 대학교의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울목포파 12명이 같은 룸사롱에서
출소파티를 벌이고 있던 맘보파 조직원들을
회칼과 도끼로 난도질한 사건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이다."
원래 서진 룸살롱은 서울목포파 애들이 관리하던 곳으로
사실 서울목포파라는 이름은 경찰들이 수사과정에서
생긴 이름이고 원래는 유도대학교 출신 젊은 20대 청년들이
논두렁 무리식으로 어울리던 무리들이였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하필 서진룸살롱 17호실에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한
맘보파 조직원 고용수를 축하하는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총 7명의 맘보파 조직원들이 있었음)
하필 꼬일 운명이였는지 바로 옆 16호실에서는
당시 서울목포파 조직원 12명이 같은 시간에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음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어이가 없게도
웨이터가 맘보파가 있는 17호실에서
얻어맞게 되고 울면서 나오는것을 서울목포파 일행이 보게
되면서 시작됐다.
자기들이 아끼던 동생같은 웨이터가 얼굴이
부은채 울면서 나오는걸 보고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왜그러냐고 따져 묻자
17호실에 있던 맘보파 행동대장이자 전라도에서
싸움꾼으로 널리 알려진 조원섭에게 얻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고 깔봐왔던 조원섭이
자신들이 봐주는 가게에서 그랬다는 사실을 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은 분노했다
때마침 화장실로 가려던 조원섭이 나오게 되고
앞에서 웨이터와 같이 있는 서울목포파를 마주치게 된다.
당시 서울목포파 고참격이던 김승길은
조원섭을 마주치자 넉살 좋게 인사를 건냈다
(김승길은 조원섭의 고향후배)
허나 김승길 옆에 있던 고금석은 달랐다
이미 열이 받을대로 받은 고금석은 조원섭을 노려 보았고
조원섭은 그게 마음에 안들었다.
한참 어린 고금석이 노려보자 열이 받은 조원섭은
사정없이 고금석을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당시 유도대 선출로 은메달까지 딴 실력자 였던
고금석이였지만 실전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조원섭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일이 벌어지자 김승길은 급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을
불렀고 밖에서 소란이 나자
룸에있던 맘보파 조직원들도 쏟아져 나왔다
허나 서진룸살롱은 서울목포파가 상주하던 곳으로
전부다 회칼과 도끼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그에 비해 맘보파 조직원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
서울목포파가 전부 무장한걸 본 조원섭은
열이 받을대로 받아
덤빌테면 덤벼 보라고 소리쳐댔다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조원섭의 싸움실력을 익히 들어온
목포파 조직원들은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조원섭은 비웃으며 말했다
"근본도 없는 유도대 양아치 새.끼들"
자신들이 숫자도 많고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무시를 당하자
열이 받은 서울목포파 조직원
김동술이 도끼로 조원섭을 내려찍으며 공격이 시작됐다
이때 공격으로 팔이 잘린 조원섭은 급히 자신들
방으로 후퇴하고 맘보파 조직원들은 문을 가로 막으며
필사적으로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을 막았다
허나 칼과 도끼로 무장한 유도대 출신들을 숫자가 적었던
맘보파 조직원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였고
결국 문이 뚫리며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이 방으로
들이 닥치게 되었으며 룸을 피로 적시며
맘보파 조직원들과 조원섭을 칼과 도끼로
난도질 하게 된다.
때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광경을 목격한 맘보파 조직원 한명과
문이 뚫리면서 운좋게 도망간 2명을 제외한
조원섭과 맘보파 조직원 3명은 무참히 살해된다
일을 벌린 목포파 조직원들은 시체들을 인근 병원에
던져놓고 뿔뿔히 흩어져 도주 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전부 검거하게 된다
가뜩이나 유도대 출신 조폭들이 많았던 터라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유도대학교는
서진룸살롱으로 학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기존 용인 유도대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용인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