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가장 장수한 사람’ 256세 이경원
▲현존하는 이경원의 유일한 사진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경원(이청운)의 기사
[시사중국] 이경원(李慶遠 1677-1933)은 무려 256년을 산 청나라 말, 민국 초기의 한의사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장수 인물이다. 그는 100살 동안 한의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 정부의 특별상을 수상했고, 200세부터도 여전히 대학에 가서 학술강연을 했다. 이 기간에 그는 일찍이 여러 서방 학자의 방문을 받아들였다. 이경원은 평생 24명의 부인을 맞았고 자손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이경원은 1933년 2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4명의 부인을 모두 먼저 보냈고 180명의 후손을 남겼다. 당시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타임지는 모두 이경원을 보도한바 있다. 추산에 따르면 그는 청나라 강희(康熙) 16년(1677년)부터 옹정, 건륭,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 선통 등 황제 9명을 거치고 중화민국 건국시까지 살았다.
장수비결
“늘 평정한 심태를 유지하고 거북이처럼 앉으며, 참새와 같이 행동하고, 개처럼 잠을 자라.” 이것은 이경원이 후세에 남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는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장수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고 했다. 음식은 주로 밥과 소량의 포도주를 위주로 했다.
그는 또 자신이 장수한 원인이 3가지에 있다고 했는데 1. 장기간의 채식, 2 마음의 평정함과 명랑함, 3. 일년 내내 연잎, 결명자, 나한과, 구기자를 달여 마셨다. 또 사람은 혈통(血通), 요통(尿通), 변통(便通) 3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혈액과 소변, 대변이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애
이경원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의학, 특히 양생술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가 200여살 고령이었을 때도 행동거지가 장년과 같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신선’으로 칭송했다.
이경원의 원적은 운남성이며 그의 다른 이름은 이청운(李靑雲)이다. 90여세 되던 때 사천(四川)성 개현(開縣)에 정착했다.
민국16년(1927년), 이경원은 사천의 군벌 양삼(楊森)의 요청을 받고 만현으로 가서 양생술을 가르쳤다. 양삼은 이경원을 상빈으로 모시고 그를 위해 새 옷을 준비했으며 사진관에 부탁해서 사진을 찍은 후 크게 확대해 주방에 걸어두었다. 성내 각 신문은 앞다투어 이 기이한 인물을 보도했고 전체 사천성이 들썩였다. 하지만 이경원은 장수의 비결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현으로 되돌아갔다. 민국20년(1931년), ‘만주일보’는 9월 15일 다시 이경원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경원이 250세가 되던 해에 사천성 개현 사람인 유성훈(劉成勳)이 그를 인터뷰했다. 당시 이경원은 신이 나서 고전을 인용해가며 양생술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개인의 양생경험을 얘기해줄 뿐만 아니라 고금의 양생술 경험과 교훈까지 언급했다. 유성훈은 이를 상세히 기록으로 남겨서 ‘자술(自述)’이라는 글에 써놓았다. 이는 후세에 전해져서 양생술의 명저로 알려진다.
유성훈의 회고글은 또 1986년 제6기 ‘기공’ 잡지에 실렸다. 이경원이 구술한 ‘장생불로비결(長生不老訣)’ 1000자도 동시에 실렸다. 북경의 일부 신문은 일찌기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기네스 세계기록’은 의심을 갖고 이경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수이론
‘자술’이라는 글에서 이경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의 수명에는 장단이 있다. 이는 원기가 주재하는 것이다. 원기(元氣)는 원기(原氣)라고도 하는데 선천적으로 받고 후천적으로 길러서 생긴다. 이것은 신(腎)에서 발원하여 단전(丹田)에 보존되고, 삼초(三焦)를 빌려 전신에 이른다. 그리하여 오장육부 등 일체 장기조직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며 동력의 원천이다.”
그는 원기를 아끼는 것을 생동감 있게 촛불과 비유해 설명했다. “만일 촛불을 등롱 안에 놓아둔다면 불타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놔둔다면 수명이 짧아지거나 바로 꺼지고 말 것이다.” 양생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경원은 노자의 말을 아주 좋아했다. “그대의 형(形)을 힘들게 하지 말고, 그대의 정(精)을 흔들지 말며, 그대의 생각이 복잡하게 하지 말라. 적게 생각함으로써 신(神)을 기르고, 적게 욕심냄으로써 정(精)을 기르며, 적게 말함으로써 기(氣)를 길러라.” 그는 양생술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이 말의 묘한 이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청나라 학자인 육롱기(陸隴基)의 말도 아주 좋아했다. “땔감이 충분하고 쌀이 충분하면 걱정할 일이 없다. 일찌감치 관청의 녹봉을 먹지 않으니 놀랄 일도 욕볼 일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았으니 이자가 생길 일도 없고 전당포 문앞을 드나들 일도 없다. 그저 맑은 차와 담백한 밥을 먹으니 장수할 수 있도다.” 이경원은 또 말했다. “이것이 양생의 묘결이고 장수의 좋은 잠언이다. 이 이치를 얻으면 장수할 수 있으니 영약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금단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는 고인들의 양생이론에 따라 특별히 양생을 잘하는 자는 자(慈), 검(儉), 화(和), 정(靜)의 네 가지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은 자신의 양생경험을 얘기하면서 “먹을 때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배부르면 위장이 상하게 된다. 잠잘 때 지나치게 자지 않는다. 지나치게 자면 정기가 손상된다. 나는 2백년을 살면서 지나치게 먹은 적이 없고 지나치게 잠을 잔 적이 없다.” “배고픔, 추위, 고통과 간지러움은 부모가 대신할 수 없다. 쇠약해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처자가 대신할 수 없다. 그저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 보전하는 길이 양생의 법칙이고 관건이다.”
그는 생활상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자잘한 일에 사람들이 조급해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몸이 상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춥고 더운데 조심하지 않거나, 발걸음을 빨리 하거나, 술과 음탕한 일에 빠지는 것은 모두 몸을 상하게 한다. 손상이 커지면 죽게 된다. 그러므로 선인들의 양생술에 따라 걸을 때도 빠르게 걷지 말고, 눈으로는 오래 보지 말고, 귀로는 끝까지 듣지 말고, 앉을 때는 피곤할 때까지 앉지 말고, 누워있을 때는 끝까지 눕지 말라. 추워지기 전에 먼저 옷을 입고, 더워지기 전에 먼저 옷을 벗고, 목마르기 전에 먼저 물을 마시고, 배고프기 전에 먼저 먹어라. 식사는 여러 번 나눠 하되 적게 먹고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라. 희노애락이 몸에 미치지 않게 하고 부귀영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장수의 이치다.”
출처 :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2&category=11&no=3150
구라같은데 256살 까지 살았다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