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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의 마지막 부분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인력거꾼 김첨지는 그날 따라 운이 좋아 손님도 많고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보니 아내가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때 김첨지는 눈물을 흘리며 ‘설렁탕’을 샀는데 먹지 못하는 아내를 원망한다.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이 1924년 6월 《개벽》에 발표한 소설이니 이미 20년대에 설렁탕은 한국인과 함께하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안성에 가면 안일옥이라는 설렁탕집이 있다. 안일옥은 1920년에 생겼다고 하니 《운수 좋은 날》이 나온 바로 그 시절이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한참 설렁탕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보다 이전인 1904년 이문설농탕이 서울에, 1910년 ‘하얀집’이라는 곰탕집이 전남 나주에 아직도 남아있다.

2017년 미슐랭가이드는 이문설농탕에 대해 "큰 무쇠솥 안에서 사골을 17시간 고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남은 뽀얗고 맑은 국물의 맛"이라고 썼다. 정통 설렁탕에 대해서 잘 표현한 것 같다. ‘'설렁탕'은 '소의 머리, 내장, 족, 무릎도가니, 뼈다귀 등을 푹 삶아서 끓인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말아먹는 음식을 말한다. 지금은 한때의 유행보다는 한국인의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선농단역사문화관의 설렁탕 설명 글

설렁탕의 유래

백년전에도 크게 유행하였다는 설렁탕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선농단(先農壇)'에서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몽골어 '슐렁(шөлөң)'에서 왔다는 것이다.

먼저 '선농단(先農壇)' 설을 보자.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농사의 신인 '염제 신농(神農)씨'를 모셔와 농사가 잘 되도록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가 이뤄지는 곳을 '선농단'이라 한다. 이 제단은 농사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 후직씨(后稷氏)를 제사 지내는 곳이었다.

신농씨는 배달국시대의 성인이며 동방한민족의 조상이다.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말기에 고시씨의 방계 자손인 소전이 강수 지역에서 병사들을 감독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중국 삼황오제 중 하나인 염제 신농씨다.  신농씨는 백가지 약초를 맛보아 백성들을 구제하였고 농경 결혼제도 시장제도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를 의학과 농경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는 신농씨를 중국의 농사의 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농단'은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데 농사가 시작하는 봄이 되면 임금이 직접 이곳으로 행차하여 쌀과 소·돼지를 제물로 놓고 제사를 지낸 곳이다. 물론 모든 왕이 몸소 행차하여 제를 지낸 것은 아니다.

세종 8년 4월 12일 세종실록을 보면 우사간 박안신 등의 상소문에서 선농단 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사직단(社稷壇)과 선농단(先農壇)의 제사는 모두 백성의 일을 위하여 이를 마련한 것이므로, 진실로 중대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제왕도 선농단에 제사를 지낼 때면 몸소 쟁기[耒耜]를 잡고 친히 제삿일을 행하였으니, 이것은 백성을 위하여 그 일을 중히 여긴 까닭입니다. 원컨대 금년부터는 한결같이 친히 제사지내기를 신명(神明)이 와서 있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백성의 일을 중히 여길 것.”

선농단에 임금이 친히 제를 지내기를 바라던 상소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조선 왕들은 선농제(先農祭)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향과 축문을 전하였다. 그런데 조선 제9대 왕인 성종成宗이 세자 및 문무백관과 함께 동대문 밖의 선농단先農壇에 나아가 몸소 제를 지냈다.

“임금이 친히 동교(東郊)의 단(壇)에서 선농제(先農祭)를 지내니, 백관(百官)이 배제(陪祭)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성종 6년(1475년) 1월 25일 성종실록 -

제를 지낸뒤에는 농경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설정한 토지인 적전籍田에서 친경親耕, 즉 몸소 농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록에는 이때에 명확하게 국이나 국밥을 긇여 먹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의식이 끝난 뒤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제물로 쓰인 소를 이용해 국을 끓여 나눠주었을 것임은 어느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이때 함께 먹은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 했다고 전한다. 선농탕이라는 말이 발음이 변하여 현재 우리가 아는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 손농탕先農湯 설은 선농단역사문화관에 가면 유력한 설로 설명되어있고 설렁탕 전문 음식점에 가보면 유래로써 설명되어있다.

 
선농단역사문화관의 설렁탕의 유래 설명

또 하나의 설은 몽골 요리 '슐렁'설이다. 몽골의 음식문화도 우리와 같은 탕문화가 있다. 슐렁은 대형 가마솥에 소나 양이나 염소를 통째로 끓여 쇠고기를 잘게 썰어 소금을 넣고 끓인 음식이라는데 여기에서 '설렁탕'이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몽골어 어학서인〈몽어유해〉에는 '고기를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골어로 '슈루'라고 기록하였다. (슈루에서 임금의 음식을 뜻하는 수라가 나왔다는 주장이 있음) 또 조선 후기의 외국어학습서인 <방언집석〉에는 이 '공탕'을 만주어로는 '실러', 몽골어로는 '슐루'라고 되어 있다. 현대 몽골어 '슐렁(шөлөң)'은 문헌에는 '슈루' '슐루'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이들이 똑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몽골어에서 들어온 '슐렁'이 '설렁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설렁탕이 선농단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것도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고려-몽골’의 음식문화 교류의 역사를 보았을 때 육식과 탕의 문화에 관해서는 몽골 문화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 두 가지 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설렁탕이라는 하나의 음식을 가지고도 그 안에 역사와 문화를 녹여볼 수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며 그 根源(근원)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설렁탕 한 그릇을를 먹으면서 농사와 의학의 아버지 염제 신농씨 신농씨와 신농단에 제를 지냈던 임금과 백성의 뜻에 대해서도 헤아려보고 몽골과 고려 시대의 역사와 음식에 대해서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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