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우리는 왜 다른가?
일본의 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 더 나은 선발방식이라는 것은 없다. 교수들이 한 학생의 잠재력,가능성을 한 순간에 평가한다는 자체가
넌센스고 교만이다. 학생들은 학생다움 즉, 공부의 결과로 평가하는게 가장 객관적이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아시아권에서는 중국과 더불어 가장 보수적인 입시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다.
일본은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을 반영 안 한다.(이것은 중국,인도도 마찬가지다.)
특히 노벨상의 메카라는 동경대,교토대인 경우 우리나라 학력고사식의 본고사를 통해 선발한다.
물론 센터시험이라는 우리나라 수능시험을 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본고사 비중이 더 크다.
그런 일본에서는 역대 1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특히 2000년대들서만도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더욱 올라운 것은 그 노벨상 수상자들중 5명이 화학상, 4명이 물리학상 수상자는 사실이다.
일본 대학입학시험 문제지를 보면 과거 70년대 본고사식이나 80-90년초반식 학력고사 문제임을 직감한다.
센터시험조차도 우리나라 수능식과 비슷하지만 살짝은 학력고사 스타일에 맞춰져 있다.
동경대의 학생선발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렇게 거의 백년 가까이 고수해오는 입시제도를 바꾸지 않았을까?
교토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본고사위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법대가 강한 추오대는 몇 해전에는 정성평가 위주의 입학사정관제를 들여놨었지만 얼마 안가 폐지해버렸다.
입학사정관제의 효용성에 의문이 생겼고 오히려 더 나은 학생을 선발할 여지가 좁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입학사정관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예술이나 운동선수도 아닌 한 인간(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한 순간에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천재적 재능이 있는 학생은 분명 눈에 띨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학생은 굉장히 드물다.
대다수 학생들은 비슷하다. 저런 천재적인 소수를 걸러내기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과연 한 학생의 잠재성,리더쉽,가능성,재능을 한 순간에 알아볼 수 있을까?
이미 로스쿨입시에서부터 대학수시까지 자기소개서 대필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다.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것을 비롯해서 각종 스펙 부풀리기는 이젠 일상적인 관행이다.
취업을 하건.. 대학입시를 치르건.. 대학원 입시를 치르건.. 자기소개서에 과장과 부풀리기
그리고 이력 껴넣기 등은 이젠 일상이 됐다.
평생 책상받이로 백면서생처럼 살아온 학자교수들은 마치 지들이 전지전능하여 그것을 알아낼것처럼
콧방귀 끼며 교만스럽게 자신있어 하지만 그들 위에서는 날고 뛰는 사교육 시장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학생다움을 느끼도록 언어와 필체를 일부러 다듬지 않으면서 재능있어 보이도록 요소요소에 특정한 단어와
그리고 특정한 표현을 살짝 세련되게 끼워넣는 첨삭지도.
들어는 봤는가? 어린 학생이 쓸 수 없는 용어는 철저하게 필터링 하면서 뛰어난 사고력이 있다는 것을 내비칠
그것도 마치 희미한 안개속에서 살짝 꼬리치듯 반기는 등불처럼 그렇게 써내려 가게 세뇌된다.
이게 대한민국 사교육의 무서움이다.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에서는 안되는게 없다.
일전에 대치동에 사는 한 학부모가 그런 말을 하는걸 들었다.
"만약 서울대가 팔굽혀펴기로 학생 선발한다면 아마 우리나라 사교육시장은 채대출신들이나
헬스 트레이너들이 꽉 잡을 거에요"라고.
뭘로 선발하건 선발에는 평가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에는 가치관념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요소 하나하나를 풀어가나는 솔루션은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사교육을 잠재우기 위한 입시제도라는 것은 존재할 수도 없다.
아무리 EBS에서 모두 출제한다해도 EBS를 죽도록 공부해서 그것을 다시 학생에 먹여주는 사교육강사들의
오랄 서비스를 받아보지 않고는 EBS 70%출제원칙에서조차 학생들은 다시 서로 나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느낄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허구다.
일본이 보수적인 우리나라로 따지면 70-80년대식 대입제도를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든든한 기초학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 아닌 인재를 활용하는 방식에 더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 즉 책과 가까이 있는 학생이 학문을 하는건 백번 지당한 것이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빌게이츠도 주커버그도 학문보다는 실리적 사업을 소중히했기에 하버드를 자퇴한 것이다.
대학에 남아 있으려면 책과 가까이 지내면서 책벌레가 될 사람들이어야 함은 당연한 소리.
이러한 기본적 전제부터 애써 부정해가면서 학생을 선발한다는 그 자체가 허구다.
정말 당연한 내용 인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