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은 서유럽과 미국 다음으로 생산력과 소비력을 갖추고 있던 준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서방 진영과의 체제 경쟁이 되었던 것이다. 동유럽 계획경제가 슬슬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초반였고, 결국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전환하게 된다.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에 동구권이 망하기 전까지 북한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구상무역을 실시하고 있었다. 특히 6.25 전쟁 이후에는 동독, 소련 등 동유럽 국가들이 북한에 무상원조를 해주었으나 북한이 배째라는 식이 많았고, 상품 교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동구권 붕괴 이후 구제불능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1970년대 초까지 북한 자체가 경제성장을 했을지몰라도 소련 및 동구권의 원조과 기술 이전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경제였다. 사실 1950년대~1960년대의 북한 도시의 재건도 무상원조로 진행되어졌다. 특히 함흥시는 동독의 지원이 커서, 1950년대 동독 지도자였던 빌헬름 피크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특히 소련으로부터 값게 들어오던 석유 공급이 중단되었는데, 소련(현 러시아)가 북한과의 구상무역을 중단하고 국제 가격에 의한 경화결제방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원래 가격 그대로 석유 등의 원자재를 사와야 되는데, 북한 자체가 1984년에 디폴트 선언할 만큼 이미 채무 불이행 상태였을 만큼 만성적인 외화 부족을 겪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수입대금 문제 등이 발생되어 필요한 원자재 수입과 기술 이전이 불가능해졌다. 이전에 북한은 우호가격제에 의한 구상무역으로 국제석유가격보다 절반 정도 값싼 가격으로 석유를 소련으로부터 공급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