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통역장교로 복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근무
1962년 국제과학문화연구소 공사관리소장 역임
1963년 미군 군납 건설과 전기공사업을 주로 하는 동경산업을 설립
1967년 동경산업의 상호를 삼풍건설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사업에 본격 진출
그리고 28년 뒤 1995년 6월 삼풍 백화점 붕괴 참사의 원흉이됨.
1995년 4월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
1994년 5월 5월부터 천장 균열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알갱이와 골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 균열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 5층을 폐쇄하고 토목 공학자들을 불러 기본적인 검사를 한 결과 '건물 붕괴 위험이 있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옴. 만약 이 시점에서 건물을 폐쇄했다면, 하다못해 임시로 휴업하고 보강공사라도 보강공사라도 했다면 삼풍백화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
사건 하루전날 건물에서 기둥이 더이상 바닥과 건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서 바닥이 쳐지고 기둥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게 옥상에서 관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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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하루전날 식당가에 배치된 탁자 사진. 이미 이시점부터 건물이 기울어 지고 있음을 육안으로 확인할수 있었으나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
그리고 대망의 사건 당일
오전 9시, 5층 식당중 한곳에 기둥중 하나에 무려 20 cm나 되는 균열이 발견되었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아 있었음을 확인 9시 40분, 백화점측은 바닥침하현상을 직접 확인하고 해당 식당을 휴업시킴.
오전 10시, 건물 4-5층에서 들려오는 '뚝뚝,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약 3분간 무거운 진동을 감지. 경영진은 5층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후 1시간쯤 뒤 몇몇 식당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
그리고 낮 12시 무렵, 백화점 측은 건축사에 연락하는 한편, 옥상의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업소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지 또한 5층 행사 매장의 도자기, 가구들을 각각 4층, 지하 3층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식당가와 같이 있던 상품권 매장도 1층 로비로 이동시켰다.
건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것이 기정사실화 된 와중에도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대피시킴
12시 30분, 건축사 직원은 5층 식당가와 4층 귀금속 코너의 대피를 건의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백화점 측은 5층 대부분의 점포와 4층 귀금속 코너의 영업을 중단, 균열의 원인으로 지목된 옥상의 냉각탑 작동도 중단, 이때부터 오후 2시까지 냉각탑의 배수 작업이 진행.
붕괴 3시간전인 오후 3시 긴급하게 회의를 열었고 이사진들이 영업을 중단해야한다고 의견을 냈으나 이준회장의 고집으로 영업중단 없이 보수작업을 개시
결국 보수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인 오후 6시경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의 처참한 인명피해가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