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삼성중공업은 닛산의 상용차부분 자회사인
닛산 디젤과 기술제휴를 맺는다.
표면상의 이유는 중장비용 파워트레인의 기술도입이었지만,
사실 삼성의 자동차사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었다.
기술제휴 이후, 그룹의 숙원사업이었던 자동차사업은
1992년에 정부로부터 대형트럭 도입인가를 받은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발돋움을 시작한다.
도입인가를 받고 2년 뒤인 1994년,
삼성중공업은 기술제휴선인 닛산의 대형트럭 빅썸을 들여와
SM트럭이란 이름으로 판매했는데,
적절한 가격과 좋은 품질덕분에 꽤나 잘팔렸고,
특장차가 필요했던 닛산의 요구에 따라 역수출되기도 했다.
1996년, 삼성중공업에서 독립한 삼성상용차는
공장을 창원에서 대구로 옮기는 한편,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서 봉고와 포터가 지배하는
1톤 트럭 시장에 야무진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2.7리터 엔진을 장착한 닛산 아틀라스 100을 기반으로 한 야무진은
빅썸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SM트럭의 사례와 달리
베르토네가 빚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해외진출보단 일본 내수에 집중하던 닛산트럭을 대신해
독자적인 상품으로 유럽 등 해외시장을 노려보겠다는 전략이었다.
1998년 11월, 세련된 디자인으로 출시된 SV110은 (1년 후 야무진으로 이름변경)
봉고보단 출력이 낮았지만, 정숙성과 연비가 좋았으며
(야무진의 실내. 당기는 방식의 사이드 브레이크가 눈에 띈다)
시야가 좋고 공간이 넓었던 실내는 계기판과 스위치가 보고 쓰기좋게 놓여있었고
틸트 스티어링, 파워 윈도우, 오토 도어락등의 장치들을 마련해놓았다.
경쟁차종들보다 적재함이 넓고,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시작가격이 800만원대로 가격경쟁력도 좋았던 야무진은
느슨해진 1톤트럭계에 긴장감을 줄 수 있을것같이 보였다.
한국의 위대한 과적을 경험하기 전까지.
사실, 삼성도 한국 상용차 시장에 만연한 과적을 모르진 않았기에
애초에 1.5톤 트럭이었던 닛산 아틀라스를 1톤 트럭으로 만들기까지 했지만...
1톤트럭에 3톤을 실어버리는 K-과적앞엔 답이 없었다.
2톤급 차체로 만들어진 봉고와 포터에 익숙했던 현장기사들은
프레임이 휘고 볼조인트가 빠지는 야무진에 실망하였고,
삼성이 만든 차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며
결국 야무진은 한자리수 점유율을 전전한다.
그래도 야무진과 삼성상용차를 포기하지 않았던 삼성은
4%를 넘지못하는 점유율과 현금손실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 금융계열사들을 통해 자금을 지원했으며,
상품성 개선모델 출시와 쌍용과의 제휴,
1만대 가량의 수출등을 통해 어떻게든 버텨내려했다.
닛산이 규정에 맞는 새 엔진공급을 거절하면서
야무진의 판매는 불가능해지고 말았고...
결국 2000년 12월,
삼성상용차는 설립 4년만에 파산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고만다.
인수되어 르노삼성자동차가 되었지만,
이들은 삼성상용차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야무진의 사후 AS와 부품공급을 해주지 않았던지라
결국 야무진의 개체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찾아보기 아주 어려운 희귀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