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 목탑
1500년 전 500년대에 만든 건축물이
최대치 81미터 (현대식 빌딩 20층 높이)
최소치 66미터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높이가 70미터)
고려시대 문인 김극기가 황룡사 9층 목탑 정상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당대 경주의 장관
80미터 높이의 건축물이 층계로 이루어져서
현대의 랜드마크처럼 정상에서 경주 시내를 내려다보는것 가능
경주 시내의 여러집들이 개미집처럼 보일 지경
기와 끝 하나하나 있던
어지간한 사람 키보다 더 거대한 화려한 치미들
조선시대 경복근 근정전 (왼쪽)
그보다 거대한 신라시대 황룡사 금당 (오른쪽)
양쪽에 동서 금당이 추가로 있어 총 3개의 금당이 존재했음
목탑과 금당
그곳에 남아있었을 많은 유물들
현재 남아있는 불두(불상 머리파편)과
불두 받침석의 추정되는 당시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크기는
무려 5미터 수준
황룡사 들어가면 5미터가 넘는 부처님 얼굴이 사람 반겨주는 셈
정설로 추정 5미터,
그런데 저 불두로 보면 불두가 너무 커서 머리만 잡아도 4~5미터라
종종 최대치로 11미터까지 추정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삼존불과 십대제자, 기타 불상을 통틀어
총 19좌에 이르는 대형 불상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이뤘을 장관들
천사옥대, 황룡사 9층 목탑과 더불어 이 장륙삼존불상을 합쳐 신라를 수호하는
신라삼보新羅三寶라고 함
신라삼보 중에 두개가 황룡사에 있던것
새들도 진짜 나무인줄 알고 착각할 정도였다는
신라 화가 솔거率居의 그림 같은것도
황룡사 현존했다면 황룡사 금당 벽에 다 남아 있었을것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신라 범종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높이만 3.75미터
그런 에밀레종의 4배였다는 충격적인 스케일의
황룡사 대종皇龍寺 大鐘
황룡사 자체만 해도 남았다면 대단한 랜드마크지만
근처 분황사까지(분황사는 지금 남아있긴 하다만 당시는 당연히 훨씬 컸음. 전성기때는 황룡사 3분의 2 정도)
남았다면 그야말로 불교 테마파크 그 자체
황룡사 남쪽으로 현대 광화문 광장에 버금되는 광장이 있어서
서쪽으로는 동궁 및 월지,
동쪽으로는 명활산성 방향으로 동서로 이어지는 도로 역시 발견됨
잘 정비된 도로를 통해 서쪽으로 몇백미터 가면 나왔을 동궁과 월지
동쪽으로 멀리 간다면
한때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추진할 당시
백제 개로왕 때처럼 고구려군이 언제 갑자기 수도로 밀고 들어올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서
신라 왕실이 머물기도 했던 명활산성까지도 도로로 연결되었음
남았다면 경주 신라 유산을 잇는 테마파크의 중심이 되었을것
건축물이니 당연하게도 끊임없이 화재가 나고 벼락 맞고 손상 되곤 했지만
신라, 고려 시대 계속 부분적으로 불타고 무너지면서도
계속 보수하면서 유지하곤 했으나...
1238년 고려 몽골 전쟁 무렵때
몽골 병사들이 와서 80미터짜리 건축물들 싸그리 불태워 버렸고
불만 태웠을리도 없고 약탈도 하고 다 떄려부수면서
남아 있었을 온갖 유물, 유산들도 전부 능욕당하고 박살나버림
9층 목탑, 장륙상, 황룡사종 전부 부서지거나 사라짐
내버려 두어도 조선시대 쯤 되면 어차피 목조 건물에 필연적으로 났을 화재 나거나 하면
고려시대처럼 보수는 안했을테니 자연스레 쇠하였을테지만
최소한 그렇게 자연적으로 쇠하면 황룡사 대종 같은 유물은 남아 있었을만한데
걍 몽골 병사들이 가서 약탈한거라 건물들 사라진건 둘째치고 유물들도 무수하게 사라짐
그렇게 몽골인들이 이악물고 조져내고 박살내고도
여전히 황룡사지에서 수만개가 넘는 유물들이 나올 정도니
전성기에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남아 있었다면 두 말할 것도 대한민국 최대의 랜드마크,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및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았을듯...
경주가면 비슷한 크기로 재현한 전망대 있던데 거기만 올라가도 지릴수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