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위인도 있지만
라이벌 구도로 대립하는 경우도 많은데
고생물학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이라고 하면 바로
오스니얼 찰스 마시와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라는 두 사람이 있다.
이 둘이 발견한 공룡만 해도 그 유명한
트리케라톱스, 알로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등
기본적으로 한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공룡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둘은 어떻게 서로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게 되었을까?
화석발굴이 한창이던 1800년대 미국.
두 명의 고생물학자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둘은 같은 발굴장에서 협력하며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이른바 동업자, 아니 친구에 더 가까운 사이였는데
심지어 서로 발견한 종의 이름을 서로의 이름으로 지어줄만큼 사이가 좋았다.
둘이서 공동으로 화석발굴을 하던 현장에서 오스니얼 찰스 마시는
발굴장의 관리자에게 뇌물을 주며 화석을 전부 자신에게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아무리 화석을 캐도 자신의 몪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는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둘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그렇게 화석 전쟁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둘은 각자의 논문과 출판물에서
서로에게 극단적인 악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 사건은
장경룡(물에 살던 비공룡 파충류) 중 하나인 엘라스모사우르스의 복원도,
코프는 엘라스모사우르스의 화석을 발견하고 상단의 그림처럼 긴 꼬리가 달린 생물이었을 것이라고 했으나
마시는 반대로 꼬리가 짧고 목이 긴 생물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엘라스모사우르스는 마시의 주장대로 목이 긴 생물이 맞았으나
당시 마시는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코프 소유의 발굴지에서 무단으로 발굴하였던 것이 들통나
둘의 전쟁은 점점 심해지게 된다.
서로는 인신공격은 기본, 발굴지를 차지하기 위한 뇌물수수,
심지어 발굴하고 난 뒤에는 서로 더 이상 화석을 발굴할 수 없도록
발굴지를 폭파해버릴 정도로 서로를 증오했고
결국 코프가 1897년에 사망, 마시가 1899년에 사망하면서
화석 전쟁은 끝나게 된다.
그 둘은 화석으로 전쟁을 치루는 동안 우리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공룡 수십종을 학회에 등록하며
고생물학의 발전에 이바지 했으나
화석 전쟁을 치루는 동안 서로를 몰락시키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해
둘 다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