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는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항로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금융과 무역이 발달하였다. 소수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던 싱가포르는 1819년 래플즈 경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고, 이후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로 개발되었다. 노예무역이 금지되었던 영국에서는 값싼 노동력인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데려오고 이들을 쿨리(苦力)라 불렀다.
1963년,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에서 독립했으나, 중국계를 경계했던 말레이시아 지도부에서 싱가포르의 75%에 달하는 화교 인구를 위협적이라 판단하고 1965년 싱가포르를 독립시켰다.
유솝 빈 이샥(싱가포르 초대 대통령)
"광요야, 우리 어떡하냐? 자원도 없고 영국 해군기지도 발 뺀대는데"
이광요(싱가포르 초대 총리)
"그러게요 행님…"
당시 싱가포르 수뇌부는 절망에 빠졌다. 고작 서울 크기의 섬나라 싱가포르는 식수와 생필품 대부분을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해서 사용했다.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싱가포르는 국가 안보의 위협을 느꼈다. 이로 인해 중국계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이웃 두 국가를 위해 싱가포르는 1990년까지 중국과 수교하지 않았다. 다만 이게 싱가포르가 가난했다는걸 뜻하진 않는다. 1965년 싱가포르 1인당 GDP는 500불 정도였지만 동시기에 한국 1인당 GDP는 100불, 일본 1인당 GDP는 900불 정도였다.
토지 국유화, 진행시켜.
리콴유 총리는 1967년, 토지 취득 조례를 폐지하고 토지취득법을 신설한다. 이 법안은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정부에 토지 강제 매입권을 부여하였다. 이 법안을 바탕으로 20년간 정부는 싱가포르 토지의 1/3인 177km^2를 매입하였고 1985년에는 싱가포르 국유지 비율은 76.2%까지 늘게 된다. 위 토지 매입과 병행한 간척 덕에 싱가포르 국유지 비율은 90%에 달한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정부는 이러한 국유지로 무엇을 했을까?
사실 좁은 영토에 인구가 폭증하던 싱가포르에게 대안은 하나였다. 바로 국가가 지어 공급하는 저렴한 임대아파트, HDB(house developing board) flat이다. 위 사진은 싱가포르 최초의 HDB로, 리콴유 총리의 싱가포르 자치정부에 의해 1961년 분양되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유화된 토지 위에 HBD를 건설하였으며, 일부 국유지는 999년 임대 또는 99년 임대 형식으로 민간에게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HDB 단지 내부에는 상가, 재래시장, 호커센터, 양로원, 유치원 등이 입점하였다. HDB는 단순 거주 공간이 아닌 커뮤니티 센터로의 역할을 감안하고 지어졌기에, 놀이터나 운동장 등 편의시설이 항상 함께 지어진다.
싱가포르 정부는 화교, 말레이, 타밀(인도) 세 민족의 화합을 위해 HDB를 이용하기도 했다. HDB가 건설되기 전, 각 민족은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등 집단 거주지에 몰려 살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타 민족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줄이기 위해서 HDB를 민족 비율별로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싱가포르인은 위와 같은 호커센터에서 여러 민족의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적어도 집 근처로 배정되는 초등학교에선 여러 민족이 어울려 다니고, 영어 사용 빈도를 높이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HDB는 무조건 99년의 장기임대 형태로 분양되는데, 리콴유 총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발언하였다.
“HDB는 99년 동안 당신에게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소유하고 한 두 세대 동안 그것을 상속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아파트는 국가에 반환되고 정부는 토지를 재개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새 아파트를 건설합니다. 이것이 땅을 재활용하고 우리의 모든 후손들이 새 아파트를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당연하게도 정부 주택은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HDB를 분양받기 위한 여러 조건을 알아보자.
- 싱가포르 시민권
어느 국가나 그렇겠지만, 정부는 자국민을 우선시한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350만명의 시민과 50만명의 영주권자, 160만의 장기체류 외국인으로 구성된다.
앞 400만명은 싱가포르에서의 병역의 의무가 있지만, 값싼 교육과 CPF라는 연금 가입 권리가 있다. CPF는 납부자가 임금의 17%, 정부가 15%를 부담하여 총 임금의 32%를 저축하는 연금이다. HDB 대출금을 이 연금으로 갚아도 된다. HDB 분양 시 이들은 싱가포르 시민권자+말레이시아인 영주권자와 나머지 영주권자로 구분된다.
싱가포르 정부는 후자를 위해 HDB의 10% 남짓을 영주권자 할당으로 지정하며, 인구 비례를 보면 사실 이들이 크게 손해보진 않는다. 다만 이들이 원하는 주택을 찾을 가능성은 내려간다.
- 부동산
국내 및 해외에 다른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 가계소득
방 2개와 일부 3개 HDB는 분양 당시 가계소득이 S$7000(약 600만원) 이하, 나머지는 분양 당시 가계소득 S$14000(약 1200만원)이하여야 한다.
- 나이
최소 만 21세 또는 35세 이상이여야 한다. 뒷 조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 동반자
싱가포르는 가족의 가치를 중시한다. HDB는 배우자와 자식, 또는 부모와 형제, 과부인 경우 자식과와 함께만 분양 받을 수 있다. 약혼자와도 HDB 분양 신청은 가능하기에, 싱가포르는 “나와 HDB 분양 받으러 갈래?” 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대신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므로, 미혼 싱가포르인은 단독으로는 35세 이후에만 분양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제일 작은 방 2개짜리 주택에만 가능하며, 이러한 이유로 동성커플의 불만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복잡한 조건을 뚫고 HDB 분양에 성공한다면 세계에서 집값이 4번째로 비싼 도시에서 자가를 소유하게 된다. HDB를 분양받으려면 주택 가격의 15%만 현금으로 납부하면 되며, 나머지 85%를 25년간 매우 낮은 이자로 납부하면 된다. 이러한 대출금 납부를 위해 위에 언급했단 CPF 적립금 사용할 수도 있다. 일정한 기간 이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시장을 통해 월세로 타인에게 임대할 수 있으며, 이 시장에서 매매도 가능하다. 이러한 시장에서 차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 기간이 감소하는 특성 상 큰 차익을 보긴 힘들다.
싱가포르는 이러한 정부주택의 성공을 위해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구성하였다. 싱가포르 지하철의 최저 운임은 약 750원 정도로, 싱가포르의 1인당 GDP가 6만불, 1인당 중위 가계소득이 230만원 정도인걸 감안하면 매우 싸다. 참고로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3000불, 1인당 중위 가계소득은 190만원 정도이다.
또한 싱가포르의 면적은 부산보다 조금 큰 710km^2로, 싱가포르 어디에 살던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내에 통근이 가능하다. 또한 싱가포르 도시 구조 상, HDB에선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20분 내에 대형 쇼핑몰에 접근 할 수 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정책은 중국 부동산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국유지를 장기 임대 형식으로 민간에게 판매하는 정책과 국가 주도의 부동산 개발 등 중국은 개혁개방 당시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였다.
참고자료
https://blog.seedly.sg/average-singaporean-household-income-stand/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009024453b
https://blog.moneysmart.sg/property/hdb-income-ceiling-bto-ec-resale/
https://www.hdb.gov.sg/cs/infoweb/homepage
싱가포르 주택정책의 배경과 입법현황_연구보고서_영어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