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백발의 노장
나관중의 오호대장군에 탑승해서 인지도는 높지만
또 관우 장비 조운 마초에 비교하면 또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져보인다
그러나 황충은 사실 유비의 건국과정에 있어 핵심과도 같은 명장이었다
유비는 관우, 장비, 조운은 모두 형주에 두고 황충을 선봉으로 세운다
물론 형주 수비도 중요했지만 수만을 이끌고 유비 자신이 친정한 익주 공략이 그보다 후순위일 이유는 없다
그리고 황충은 유비군의 선발대로 나서 유장군의 주력인 유괴, 장임, 냉포, 이엄을 차례로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삼군(三軍)의 으뜸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리고 대망의 한중공방전
유비는 조운을 황충의 부장으로 딸려 보낼만큼 황충을 신뢰했고
법정의 계책에 따라 무려 하후연을 기습하여 참살하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일생의 숙적 조조를 상대로 한 유비의 최고의 승리 역시 황충이 주역이었다
이후 한중왕에 올라 전후좌우 사방장군을 임명하는데 관우, 장비, 마초와 함께 황충이 당당히 후장군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다
오호상장은 조운빠였던 나관중의 각색이며
호족 대우 성격으로 임명된 마초와 의제 관우, 장비를 제외하면 촉진영 장수 중 최고의 대우를 받은것이다
자존심센 관우가 이같은 황충의 활약에 자극받아 형주에서 급발진한 것이 아닐까?
유비는 입촉부터 신예 황충을 기용해서 재미를 톡톡히 봤고
이후에도 한중태수로 위연을 임명, 상용공략에 유봉과 맹달 기용, 이릉전투에 풍습을 기용하는 등
파격적인 신예 기용을 계속했으니 리빌딩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릉에서 다 갈아마셨다)
기존 장수를 계속 중용하는 조조의 용인술과는 확연히 차이점이 있다고 할수있다
이후 황충은 연의에서처럼 이릉전투에 직접 참전하지는 못하고 220년에 사망한다
아마 생존해 있었으면 이릉에서도 활약하지 않았을까?
짧지만 강렬했던 유비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장수는 바로 제갈량도 관우도 장비도 아닌 황충인 것이다
끗
그냥 늙은인줄알았는데 너무 어릴때 삼국지 읽고 안읽어서 그런가보다 다시 정독해야게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