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해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의 협력을 약속받고
한국국제제철차관단(KISA)이 발족하여 제철소 건설이 순조로울줄 알았으나
KISA가 선뜻 건설자금을 내놓지않았습니다. 당시 국제부흥개발은행의 한국 담장자인 존 박사가
한국의 제철소가 경제성이 없다고 봤기때문입니다.
박태준 회장은 모기업인 코퍼스의 포이 회장한테까지 찾아가 우리나라의 상황과 제철소 건설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결국 차관을 받아내는데에 실패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제철소 건설은 꿈으로만 남나 했었는데
박태준 회장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이용하여 제철소 건설자금 1억 달러를 마련해야겠다는 구상을 하게됩니다.
박태준 회장은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와 일본제철의 전신인 야와타제철, 후지제철과 일본강관을 찾아가
설득한 결과 일본은 한국에게 기술과 차관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포항제철소 건설의 첫 삽을 뜰수있게 되었습니다.
1968년 6월 박태준 회장은 제철 건설요원들을 새벽부터 불러모아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것인만큼
건설 현장 사무소에서 나와 우향우해 모두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라고 외쳣습니다.
어려움 끝에 1973년 6월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을 토해냈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