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문명/역사
2022.10.24 14:52

역사 속 살인마들

조회 수 136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빌리 더 키드 (1859.11.23~1881.7.14)

 

 

미국서부시대에 가장 악명을 떨쳤던 킬러라고 합니다. 

본명 윌리엄 보니(william h.bonney). 뉴욕 출생. 

21년의 짧은 생애에 21명의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본래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에 양친과 함께 

캔자스로 이주하였고, 아버지가 죽자 다시 

뉴멕시코에 가서 살았다. 

 

13∼15세 때 어머니를 욕보이려 한 남자를 죽인 것이 

악의 길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카우보이가 되었는데, 1878년 자기가 속한 목장과 

다른 목장과의 싸움(세칭 링컨郡의 싸움)에서 

열세인 자기편을 이끌고 대단한 싸움 솜씨를 보여 

총잡이로서의 용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무법자가 되어, 

소도둑 같은 짓을 한 것으로 전한다. 

한때 보안관 s.p.f.갤럿에게 항복하였다가 

간수를 죽이고 도망쳤으나, 끝내 갤럿에게 사살되었다. 

전설에는 그가 의적(義賊)으로 되어 있으나 근거는 없고, 

도리어 잔인하고도 비정한 젊은이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틸라 더 훈 (406년~453년)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 

406년-453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훈족의 왕입니다. 

roman empire라고 불릴정도로 전 유럽을 정복했던 

무시무시한 정복자입니다. 그 당시의 유럽인들은 

그의 예기만 들어도 집 대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잭 더 리퍼 (19세기? ~ ?) 

 

 

잭 더 리퍼는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연쇄살인마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가장 ‘현대 

적인’ 연쇄살인범의 범주에서는 최고 고참이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후기의 영국 사 

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희대의 인물은 근대사회의 총아인 대중 매체를 통해 전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스타’ 살인마였다. 

 

또한 지문 채취나 혈액/체액 채취 추적 같은 근대적 수사방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의학적 수사망은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자행된 

리퍼의 예술(!) 살인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서 범인 추적에 난항을 겪었다. 

당시의 법의학, 제도, 수사망 등 국가 장치들을 훨씬 앞질러 가며 조롱을 던진 

리퍼에 대한 연구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대통령에 대한 저서를 더한 숫자보다 많을 정도로, 

리퍼 케이스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도 만만치 않다. 

 

학문적 연구에서 단순한 호기심까지, 리퍼 케이스가 이토록 매혹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리퍼 케이스는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으로, 

연구 자체가 ‘누가 저질렀는가?’라는 고전적인 추리소설(whodunit)의 형태를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21세기에 살고 있는 법의학자나, <프롬 헬>을 통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 관객이나, 

리퍼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리퍼 케이스가 가진 최고의 매력인 셈이다. 

 

리퍼의 연쇄 살인은 그 *점에서부터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1888년 8 월 31일 살해되어 런던 이스트엔드의 창녀 밀집 거주지역이었던 화이트채플 

(whitechaple) 거리에 방치된 채 발견된 메리 앤 니콜스(43)를 리퍼의 첫 번째 범죄 

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퍼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드러나기 이전 유사한 창녀 살인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종종 이 첫 번째 희생자에 대해서는 엠마 스미스 등의 다른 피해자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후 메리 켈리(25)까지 5명의 창녀가 리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이야기되어지는데, 

이 다섯 명으로 압축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극심한 하류층에 속한 창녀들이 살해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따라서 단지 창녀만을 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리퍼 케이스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리퍼 케이스를 규정해 주는 것은 바로 리퍼의 살인방식 (modus operandi).

5명의 창녀들은 각자의 정도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대범하고 정교하게 사체를 유린당했다. 

 

 

대개의 사인인 칼로 목을 따는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행되었으며, 

그 이외에도 사체 유린 역시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깨끗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당시 런던 경찰이 인체와 해부학에 능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로 용의망을 좁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블라드 더 임팰러 (15세기 ~ ?) 

 

 

바로 이사람이 오늘날 드랴큘라로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바로 루마니아의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인물로서 15세기 

루마니아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일 뿐 아니라 

오늘날 드랴큘라 예기를 탄생시킨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그는 무려 10만명에 달하는 백성을 피에 굶주려 학살한 

것으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바토리 여백작 (16세기경 ~ ??)★ 

 

16세기경 실존했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elizabeth bathory는 너무나도 유명한 "피의 여 

왕"이다.

 

elizabeth bathory는 1560년 transylvania (현재 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 

방)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이었다. 가장 유명한 친척은 istvan 

bathory (1533-1586), 1575년 부터 86년 까지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였으며 폴랜드의 

왕이었다.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집안 

의 근친결혼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유전질환인 간질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 계통 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와도 연관이 있 

을 것이다. 

 

15살 때 bathory는 ferencz nadasdy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이었 

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csejthe (체터) 성 

에 살았으며, 백작은 투르크와의 전쟁때문에 거의 떨어져 지냈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감한 남편 ferencz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 (black hero 

of hungary)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때 

문에 외로워진 bathory는 젊은 남자와 수많은 염분이 났다. 또한 thorko라는 하인이 

bathory에게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 

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쉽게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 했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를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 

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paul을 낳았다.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bathory는 유모인 ilona joo, 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 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 

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 

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다. 남편 ferencz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 

했고, bathory의 남성편력또한 심해졌다. 

 

 

평소에 무척 미워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든다. 처음엔 말이나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 

고 하는데,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는 것에 초조하던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예전의 고운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로 머리를 심하게 당기자, bathory는 하녀의 얼 

굴을 마구 구타했고 그녀의 손톱에 하녀의 얼굴이 긁혀 피가 나왔다. 하녀의 피가 

bathoty의 손에 떨어졌고, 이를 씻던 와중에 bathot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고와 

진 것을 느꼈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해답이라 생각한 그녀는 수 

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이때부터 bathory는 피의 백작부 

인이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 

끔 아름다운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나중에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셨다고도 전한다. 

그녀의 특별한 재미를 위해 허공에 매달아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여, bathory가 그 철창 밑에 서서 아래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 

다고도 한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문을 통해 적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빈번했던 당시 전쟁덕분에 ferencz 백작또한 

많은 고문기구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극악한 고문기구중 하나를 이용해 처녀들을 

고문하는 것이 bathory의 취미기도 했다. 고문은 결코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어쩔때 

는 수주일간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끊임없이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 의 

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 

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까닭없이 실종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게다가 농촌 처녀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어 

피를 제대로 보충할 수 없었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의 피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겼고, bathory는 성 내부에 전반적인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일종의 '귀족 여학 

교'를 설립하고 한번에 스물 다섯명씩 학생을 받는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 쯤 부터 bathory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 

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강가, 성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었 

고, 한번은 시체 네구 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려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마침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 

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 

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 

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 

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 

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ujvary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 

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대개는 몇주 

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 

은 총 630-660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erzsi majorova도 처녀를 공급하는 댓가로 돈을 받았 

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 

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정작 bathory는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졌다. 대신 bathory는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죽기전 bathory는 재산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줄것을 

2명의 성직자에게 구술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 

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bathory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sadism과 흡혈귀의 소재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bathory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은, 

 

첫째, elizabeth bathory는 엄청나게 미인이었으며, 천사처럼 선해보이는 용모였고, 

특히 피부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우유빛이었다고 전한다. 

 

둘째, bathory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 

나게 똑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헝가리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bathory는 헝가리어,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지적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 

라있었다고 전한다. 

 

셋째, 그녀가 죽은 후에도 100년 이상 bathory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 

을 만큼,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넷째, bram stoker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군주 vlad dracula를 모델로 한 것이 아 

니라, 실은 elizabeth bathory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다섯째, elizabeth bathory 백작 부인의 재판 기록은 아직도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고 한다. 

 

여섯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으며, 주로 슬로바키아 출신 하녀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름 대신 'the hungarian 

whore'(해석하자면 "헝가리 갈보년")라고 부른다


소중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기준 추천수 이상이 되면 아이콘을 가지게 됩니다.

김짤닷컴에서는 도배 및 무성의 댓글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길시 무통보 7일 차단이 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917 사고/이슈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 주범 근황이라고 알려진 짤의 진실 재력이창의력 2024.11.11 715
14916 문명/역사 대머리가 유럽에 끼친 영향 재력이창의력 2024.11.11 618
14915 문명/역사 유대인들의 전통 혼례 재력이창의력 2024.11.11 601
14914 문명/역사 나였다면 278만원을 안 받을수 있었을까? 4 재력이창의력 2024.11.11 621
14913 일생/일화 트럼프의 외교정책 정리.. 재력이창의력 2024.11.11 580
14912 문명/역사 한국vs미국 세탁기 관세 전쟁... 재력이창의력 2024.11.09 738
14911 문명/역사 인류 역사상 가장 미개했던 치료법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487
14910 문명/역사 왕의 묫자리를 정한 용한 풍수지리사 1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200
14909 문명/역사 노부나가가 만들었다는 해골 술잔의 구조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295
14908 문명/역사 조선을 영원히 점령하리라 : 조선총독부 청사에 얽힌 이야기 3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086
14907 일생/일화 조선이 광적으로 집착했던 지역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202
14906 일생/일화 세계 3대 프라모델 회사를 알아보자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151
14905 우주/과학 물리학계에서 논쟁중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가설 1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089
14904 문명/역사 조선시대 vs 에도시대 식사량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126
14903 일생/일화 1894년에 출시된 최초의 코카콜라 병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005
14902 일생/일화 화가의 의도와 다르게 유명해진 작품 꾸준함이진리 2024.11.05 1010
14901 문명/역사 1910년에 촬영된 청나라 베이징 사진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964
14900 문명/역사 기원전 7000년경 중석기 시대의 소녀 file 꾸준함이진리 2024.11.05 980
14899 문명/역사 인도의 심각한 힌두 극우화 재력이창의력 2024.11.04 1094
14898 문명/역사 화가의 의도와 다르게 유명해진 작품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114
14897 문명/역사 1910년에 촬영된 청나라 베이징 사진 file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091
14896 문명/역사 기원전 7000년경 중석기 시대의 소녀 file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089
14895 자연/생물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충견들 file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101
14894 문명/역사 21년 동안 미제였던 사건 file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125
14893 일생/일화 핵폭탄 두 번 맞고도 살아난 사나이 file 재력이창의력 2024.11.02 109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97 Next
/ 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