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조훈현 국수
세계 바둑 최다승
역대 세계 바둑계 최초의 전관왕
세계 최초 바둑기전 그랜드슬램
바둑 기사 역대 최다 연속 우승 기록
한국 바둑 기사 우승 1위
커리어만으로도 이렇게 빛나는 전설이지만...
더욱 주목받았던건 그의 "재능"
상기했듯이 세계 바둑계 GOAT로 불리는 오청원을
가르치고 도저히 눈에 차는 사람이 하나 없었는지
제자 한 명 안 들이던 세고에 9단
그러한 세고에 9단이 지도기를 두 세판 두더니 기타니 9단 문하에서 낚아채 30년만에 받아들인 제자가 조훈현
세고에 9단은 조훈현 9단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주길 바랐던 부모님의 편지에 대해
이런 답장을 보냄
바둑은 예(藝)이면서 도(道)입니다./ 기량은 언제 연마해도 늦지 않습니다./ 큰 바둑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도야가 우선이지요./ 훈현이의 기재는 우칭위안에 버금갑니다./ 아니 우칭위안을 능가하는 기사가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 세고에를 믿고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렇듯 세고에 9단은 조훈현 9단을
장차 오청원을 능가할 수도 있는 기재로 봤던 것 같음
이렇듯 9세 7개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프로에 입문한 조훈현 9단
13세로 일본 최연소 데뷔 기록 타이도 세움. 만약 기타니 9단 문하로 갔으면 훨씬 더 빠른 데뷔를 기록했을듯
이렇듯 데뷔 후 신인왕도 차지하고 승승장구하다...
군대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해버림
이에 큰 충격을 받고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고에 9단...
절친인 설국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자살도 영향을 끼쳤다 함..
세고에 9단의 유서 내용은
"조훈현을 꼭 다시 데려와 대성시켜주길 바란다"
그만큼 오청원 이후 처음 보는 천재 조훈현에 대한
기대가 어마어마했음
이렇듯 낯선 환경, 스승의 죽음, 군 입대로
수많은 기간을 날려버렸음에도 기어코 돌아와서
한국 바둑의 역사를 쓴 조훈현
조훈현의 경력에서 특이 사항이라 할만한 점이 있다면
한국 바둑계가 완전 듣보잡 취급을 받고
국제대회라곤 슈퍼대항전밖에 없던 시절
(20세기 최후의 국가 주도 카 퍼레이드, 응씨배 우승)
제대로 된 국제 대회인 1회 응씨배가 개최되자마자
변방이라 치부되던 한국 바둑 기사 중
조훈현 단 한 명만 초청됐음에도 중일 바둑 기사들을
전부 개박살내고 우승하여 한국 바둑을 일으켰으머
무려 48살에 세계 대회 2관왕
49살 10개월에 역대 최고령 우승, 무려 대회 2연패를
달성해냈다는거임
물론 시대의 차이가 있지만 이창호는 20대 후반부터
극명한 하락세를 보인 반해 조훈현은
제대로 된 국제 기전조차 없어 38살에야 처음 열린
응씨배를 통해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40대에도
제자인 이창호와 세계 최고를 두고 겨뤘으니
그 재능을 알만하다 할 수 있음
웃긴건 내로라하는 바둑 기사들의 평도 이를 같이 하는데
사형이자 또다른 GOAT급 기사 오청원은
"이창호는 수년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천재, 진정한 천재는 조훈현 단 한 명" 이라는 평가를 내렸으며
후지사와 또한 조훈현을 두고
"바둑의 재능만 두고 본다면, 나와 비견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평을 내렸고
녜웨이핑 또한
"이창호는 노력형 천재, 진정한 천재는 조훈현"
이라고 하나같이 의견을 같이 했다는거임
아무튼 이 정도의 천재로 칭송받는 조훈현이니
본인도 천재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높은데
이세돌은 천재가 아니라 독특한 기풍을
가진 "천재형"
본인의 제자인 이창호 9단에 대해서는
천재가 아니었는데 몇시간을 꿈쩍 안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내버려두기 아까웠고
뭔가 아쉬운데 포기하기는 싫은 계륵으로 평했다가
최근에는 천재관이 좀 바뀌어서 다른 유형의 천재라
평가하시는 것 같음
아무튼 3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혼자만 초청된
응씨배에서 중일 기사들을 전부 개박살내고
한국 바둑의 위상을 끌어올렸으며
정치 입문하는 듯하더니 바둑진흥법만 제정하고
정치계에서 바로 발 뺀 한국 바둑계의 대부 조훈현 9단
낯선 환경+스승의 죽음+군 입대라는 각종 난관을 넘고
세계 바둑계 GOAT급 기사가 되었으며
49살의 나이에 세계 대회 2연패를 달성해낸걸로 보아
타고난 재능은 정말 역대 최고 아닐지...?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