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마오리족은 워낙 호전적이어서 유럽인들이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때
유럽인들로부터 총기,장검등을 구입하여 평소 마음에 안들었던 마오리 부족들을 습격하여 학살하기도함.(그래서 유럽인들과 일찍 접촉한 북쪽의 마오리족들이 유리했음)
심지어 500여명의 마오리족들이 유럽인 선장과 선원들을 고용하여 뉴질랜드 본토에서 700km정도 떨어진
채텀섬으로 처들어가서 섬의 원주민 모리오리족들을 학살하고 잡아먹기까지했었음.
그리고 머스킷을 구입하여 마오리족들끼리 싸운 전쟁을 '머스킷 전쟁' 이라고 함.
이 호전성을 본 영국인들은 "이건 좀 아닌듯" 하면서 싸우고있는 마오리족들을 중재하기함.
뉴질랜드에 온갖 유럽인들이 몰려들고 프랑스가 뉴질랜드를 먹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위협을 느낀 마오리족 추장들은 다른 마오리족 추장들을 찾아가며
"영국인들이랑 지내보니 괜찮은거같은데 걍 얘들 보호령으로 들어가는것도 좋을듯" 라며 설득을하고 이 설득은 먹히게됨.
<와이탕이 조약 원문>
약 540여명의 마오리족 추장들이 동의하면서 '와이탕이 조약' 이 발효되었고
마오리족들은 공식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으로 들어감.
그런데 영국인들과 마오리족들간의 상식과 번역문제로 마오리족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인정못받는걸 깨닫자
"이 맞짱 깔 새끼들아" 뉴질랜드 총독 관저를 불태우면서 '마오리 전쟁' 이 발발하게됨.
이 전쟁도 사실 마오리족들은 하나로 규합되지 못하고 마오리 vs 친영국 마오리, 영국군
이 구도였음. 앞서 말했듯이 마오리족은 전투의 프로여서 게릴라전, 방어진지 구축으로 영국군을 괴롭힘.
아무튼 이 저항에 대응하기 어려웟던 영국은 1867년, 마오리족에게 투표권과 피선거권을줌으로서 전쟁을 끝내고
마오리족은 호주의 어보리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과는 확실히 나은 대우를 보장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