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희(1929~2019) 한솔그룹 고문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4남 6녀 자녀들중 장녀로 현 한솔그룹의 초대 총수(대한민국 대기업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수이기도 함)
우리나라 1세대 여성기업인이기도한데 이병철 창업주가 매우 아낀 자녀임.
먼저 이분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아버지는 우리나라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으로 이인희 고문은 삼성그룹이 설립된 1938년 이전인 1929년 출생이심.
첫딸이라 각별힐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어린 시절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았고 부모님이 오르간을 사주어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다고 함.
공부를 잘해서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북여고에 진학해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진학하기도 하심.
다만 이분도 일제강점기 당시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와 양조장을 지배인에게 맡기는걸 보셨고 태평양전쟁 당시 모심기, 과수원 열매 따기, 군복과 군화 깁기 등에 동원되기도 했다고 함.
이병철 회장은 큰딸을 아꼈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에서 출장을 다녀오면 "여사장학"이라는 책과 경영관련 도서 수십권을 선물해주기도 했음.
또한 공장 시찰에도 데리고 가는등 경영자로써 성장을 도왔다고 함.
그러던 이인희 고문이 경영일선에 뒤늦게 나선건 1979년 50세가 넘어서였음.
바로 현재 조카 이부진 사장이 경영중인 호텔신라의 고문으로 선임됨.
이 시기 당시 이인희 고문은 서울 신라호텔의 개보수작업, 제주 호텔신라 건립을 이끌었다고 함
제주 호텔신라 건립 당시 조경수 한그루까지 몸소 골랐다는데 현재 제주호텔신라를 감싸고 있는 동백나무 150그루를 구할려고 한라산 중턱의 농원을 찾아 700그루 나무를 하나하나 다 살폈다는 일화가 존재함.
또한 이인희 고문은 경영진이 채울수 없는 비품, 서비스, 음식, 기물, 유니폼, 객신, 식당 구석구석을 직접 챙기심.
한식당의 음식맛이 나지 않자 자택에저 직접 장을 담가 나르고 임직원들을 자택으로 초청해서 음식맛의 중요성을 알림.
또한 이 당시 호텔도 주식시장에 상장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셔서 호텔신라가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게 됨.
이러한 모습을 본 이병철 회장은 이인희 고문을 보고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길 재목"이라고 호암자서전에서 당시 평했음.
이인희 고문 자서전에 따르면 이화여대에서 가정학을 전공해 음식, 서비스, 인테리어 등 섬세한 여성적 터치가 필요한 호텔사업이 잘 맞았다고 함.
이후 이인희 고문은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게 되심.
바로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고문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됨. 지금이야 제지사업이 디지털시대에 사양사업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으나 저 당시만 해도 알짜배기 사업이였음.
이렇게 경영인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활동하게 됨.
그러던 중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78세로 타계하고 뒤이어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회장이 됨.
이인희 고문의 경우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전주제지, 호텔신라,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 지분을 상속받게 되었음.
이건희 회장은 이인희 고문의 남동생으로 13살 나이차이가 남.
이후 1991년 이인희 고문은 본인이 경영에 참여하던 전주제지 계열사를 가지고 삼성그룹에서 독립을 함. 완벽하게 계열분리가 마무리된건 1993년임.
호텔신라의 경우 당시 외국인 지분이 높았고 이인희 고문의 지분이 낮은 상황이였기에 이들의 상황을 고려할수밖에 없었음.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반대했다고 함.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도 부채가 많았고 전주제지그룹이 막 계열분리 후 자리잡는 상황인지라 삼성그룹의 품으로 다시 돌아감.
이후 전주제지그룹을 순 우리말인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영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함.
단 다른 기업집단의 총수들과 달리 이인희 고문은 "회장" "부회장" 같은 직함을 사용한적이 없다고 알려짐. 하지만 그럼에도 그룹의 총수직함을 유지했음.
이인희 고문의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독립 후 급성장하게 되는데 1996년 당시 재계순위 22위로 지정되면서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기업집단으로 인정받음.
동시에 이인희 고문은 한솔그룹의 총수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경제계에서 여성이 대기업 총수로 지정된건 이인희 고문이 최초임.
1997년 당시 재계순위 16위, 1998년 당시 15위, 1999년에는 12위까지 올라감.
그러나 IMF 이후 여파로 과도한 차입금에 따른 유동정 문제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여러 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되며 그룹의 규모는 많이 축소됨
이인희 고문은 이 당시 구조조정위원장으로 나서게 되었는데 이 사례가 상당히 모범적이여서 일본 NHK에서 한솔그룹의 사례를 방송하기도 함.
이인희 고문은 2019년 91세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함.
공식적으로 마지막에 모습을 비춘건 2015년 남동생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장례식이였음.
현재 한솔그룹은 장남 조동혁 회장, 조동길 회장이 경영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