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여성살인마를 떠올린다면 엄여인 보험살인사건의 주인공 '엄인숙'이나 90년대 일어난 보험연쇄살인사건의 주인공 '김선자' 를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주인공은 따로 있어
바로 1970년대에 일어난 박분례 보험 연쇄살인사건이야. 사건 시기는 1974년부터 1975년으로 종전 이후 첫 국내 연쇄살인사건으로 보는 범죄연구학자들의 시각이 있는 사건임
먼저 이 사건의 범인 박분례씨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1931년생인 그녀는 그 당시에 중학교까지 나온 학력의 소유자인걸 감안하면 꽤 잘사는 가정의 자녀였음
19살때 1번 혼인했고 1남 1녀를 낳은 뒤 이혼한 그녀는 체포 당시 50대 나이에도 연하남 엄씨와 동거중이였다고 함. 젊은 시절 꽤 미인이였기에 이혼 후에도 여러 지역유지들과 동거를 즐길정도로 인기도 좋았다고 알려짐
박분례씨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덕분에 손 쉽게 주위 사람들을 살해하고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얻을수가 있었어
이 직업을 추천해준 사람은 박분례씨의 초등학교 동창인데 조금씩의 돈을 내면 나중에 화재,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불입금의 5~10배를 받을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분례씨가 친구를 조르고 졸라서 이 직업을 가지게 됨
입사 초기 동료들의 평에 따르면 오히려 박분례씨는 성실하고 친절한 설계사였고 어린 여자직원들을 위해서 결혼할때 손수 한복을 지어준다던가 아니면 음식을 장만해주는 등 자상하고 따뜻한 성격이였다고 함
아마 박분례씨가 연쇄살인마로 돌변한 이유는 고객들이 거액의 보험금을 받는 모습을 보고 범행을 결심한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박분례는 첫 살인을 저지르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시기는 1974년 10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30년지기 지인 최무순씨가 첫 범죄 대상이였어
최무순씨는 박분례씨보다 12살이나 어렸지만 둘은 어머니가 친구사이였기에 친한 언니, 동생 지간이였다고 했어
7개월전인 74년 3월 박분례는 최무순씨에게 ㅎㄱ생명보험(이 회사는 아직도 현존하는터라 이름은 표기하지 않을께)에 400만원짜리 양심저축성보험과 200만원짜리 재해특약성보험을 가입시켜
그리고 7개월 뒤인 1974년 10월에 최무순씨에게 청산가리가 든 우유를 먹여 독살했고 보험해약금 22만원(현재 기준 660만원정도)을 본인이 꿀꺽했어
첫 범죄로 나름 꽁돈을 얻은 박분례씨는 더 큰 돈을 얻기 위해 범행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또다른 범죄대상을 정하게 됨.
바로 그녀의 "언니" 일가족이야
박분례씨의 두번째 범죄는 1975년이며 박분례씨가 범행대상으로 잡은 인물은 바로 친언니 박분선씨(1921년생)였음
박분선씨는 중풍투병중인 남편, 아직 중학생인 어린딸과 당시 군복무중이던 아들이 있었고 남편이 병환으로 투병중이였기에 매우 생활은 가난했지만 밝고 당찬 성격으로 동네에서도 인심이 좋았다고 했음
때는 1975년 1월 31일이였어. 이 날은 박분선씨의 시아버지 제삿날이였음. 이때 박분례씨는 언니의 제사음식 장만을 돕는다는 이유로 언니집에 와서 상차리기를 도와줬다고 해
이후 언니,형부,조카딸이 안방에서 잠들자 안방의 문앞에 휘발유를 뿌리고 초를 넘어트려서 불이 나게 만들었어. 그리고 재빠르게 달아난 박분례는 300m 떨어진 사촌오빠네 집에 와서 아무 일 없던것처럼 잠을 청했어
이 사고로 언니 박분선씨와 조카딸은 사건 당일날 세상을 떠났지만 형부는 그 다음날까지 심한 전신화상을 입은채로 살아있었대
사건을 조사하러 병원을 방문한 경찰이 형부에게 말을 걸때 박분례는 다가오는 형사를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
'우리 형부가 풍을 맞아서 말을 잘 못해요...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대신 형부가 말하는걸 전해드려도 될까요?'
이 사건은 중풍이 있던 박분례씨의 형부가 실수로 초를 넘어뜨려서 생긴 단순화재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로 처리되었어
그리고 이 사고를 통해 박분례는 보험금 1500만원(현재 기준 3억 5천만원정도)을 꿀꺽했다고 해.
큰 돈을 얻은 박분례는 이 돈들을 사치로 거의 다 써버렸다고 해. 고급백화점의 단골손님이였고 호스트바에서 20살 어린 남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즐긴터라 동거남과 매일 치고박고 싸웠다고 함
그리고 박분례는 언니 일가족을 살해한 후 얻은 보험금도 다 써버리자 3번째 범행대상을 정하려고 곰곰히 생각했어
박분례는 급한 나머지 또다른 범행대상을 물색해봤어...이미 본인 친정에서 언니 일가족은 싹 다 몰살시켰으니 보험금 나올 구석이 없고...
그녀의 3번째 범행 대상은 바로 "시아버지"야
동거남 엄씨의 아버지로 75년 4월 당시 73세 고령이였던 노인이던 시아버지는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어. 평소 자신이 자녀가 있는 이혼녀 출신이라는 이유로 박대했던 시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다고 알려졌다고 해
이후 그녀는 시어머니의 칠순 생신 날 시아버지가 드실 식혜에 독약이 든 우유를 타서 시아버지를 살해했어.
당시 70대 고령이였던터라 경찰이 올것도 없이 그냥 자연사로 장례를 치루었고 시아버지 사후 동거남이 받은 시아버지 유산을 몰래 또 흥청망청 본인이 다 써버렸어
여기서 박분례는 또 고민이 생긴거야. 동거남 몰래 시아버지 유산을 다 써버렸으니..동거남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자기는 맞아죽을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래서 또 살인을 저지르기로 마음먹게 되었음
그녀의 마지막 범행대상은 바로 그녀의 "시동생"이야
박분례씨의 동거남의 동생 엄모씨가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거지...엄모씨는 평소 몸이 약하고 잔병치례가 많아서 손아래동서(시동생의 부인)가 남편의 건강을 자주 걱정한걸 귀 기울려 들은 후 범행대상으로 삼은거야
1975년 5월 11일 박분례씨는 사업 이야기를 한다는 핑계로 시동생을 동네 찻집으로 불렀어. 그리고 시동생의 우유에 극약을 몰래 넣어 먹여 살해했다고 해
여기에서도 시동생의 가족들은 평소 심장이 좋지 않던 시동생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사한 것으로 생각하여 심장마비사로 처리되었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가버렸음.
박분례는 시동생의 부인인 자신의 동서에게 "시동생 앞으로 4백만원짜리 생명보험을 들었는데 보험금을 타 주겠다"고 말해 그의 인감증명을 받아 보험금 청구를 했어.
그런데 보험금이 4백만원이 아닌 4,40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서가 박분례에게 보험금의 전액을 내놓으라고 따지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말았음...
이렇게 박분례는 친한동생, 언니,형부,시조카,시아버지, 시동생까지 총 6명을 죽였는데 아이러니하게 박분례의 범행이 들어나게 된건 자신의 가족 때문이야
앞서 언급한 언니의 아들이였어. 당시 박분례의 언니 박분선씨의 아들은 강원도에서 군복무중이였는데 제대한 이후 자기 일가족들이 죽은 후 나온 보험금들을 이모가 수령했다는 이야기를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듣게 된거지
이후 이 아들은 매우 성이 나서 자신의 이모 박분례씨를 찾아가서 따지게 되었어
"이모!!! 우리 부모님이랑 동생이 죽고 나서 나온 보험금..사실상 목숨값인데 왜 그걸 이모가 가져가요? 다시 돌려줘요!!!"
덩치가 산만한 조카가 화를 내자 겁이 난 박분례는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돌려주겠다고 얼버부린거야. 여기서 의심이 든 조카는 경찰에 자기 가족들의 죽음에 관련한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하게 되었어
이로 인해 박분례의 연쇄살인극은 모두 탄로나게 되버렸어
결국 박분례는 1978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음해 1979년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어
그리고 1983년 부산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어 (향년 57세)
이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보험금 수령 시 기준이 더 빡세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