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
D- Day
제 101공수사단은 D-Day 당일 새벽에
노르망디 전선 후방에 투입됐어.
대규모 공수 강하가 이뤄졌고 이들의
주 목표는 해안포 진지와 교량의
우선 점령이었지.
이 때 101 공수사단 소속의 부사관
한 명도 작전에 투입됐는데
그의 이름은
조셉 베얼(Joseph Beyrle) 하사
베얼 하사는 작전 당일 노르망디에
무사히 공수 강하를 했으나
낙하 후 동료들과 떨어져 홀로 남은 이후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쫒기기 시작했어.
그렇게 독일군에게 쫒기던 와중에 우연히
프랑스 레지스탕스들과 마주쳤고
그들과 합류하여 인근 마을 발전소를
폭파하는 사보타지를 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어.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고
그대로 독일 <STALAG-3C 수용소> 로
압송되어 수감되어야만 했지.
그런데 이 양반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수 차례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는 다른 수용소 포로들과 힘을 합해
수용소를 탈출 한 후
기차역에서 폴란드로 가는 기차를 타려다
실수로 베를린행 기차를 타는 바람에
수용소에 다시 끌려갔어.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을
모아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으나
하필이면 도주과정에서 게슈타포에게 검문을
받아 서툰 독일어로 인해 스파이로
의심을 받기 시작헀고
그를 검문한 게슈타포들이 현장에서
곧바로 처형하려 들었으나
독일국방군 병사들이 그가 전쟁포로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막았다고 해.
이렇게 베얼 하사는 두번의 탈출실패를
겪고 탈출의지가 끊긴 듯 했지만
그는 어림 없다는 듯이 세번째 탈출을 시도해
동료 포로들과 수용소에서 빠져나갔어.
그 과정에서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베얼하사는 현재 전황이
독일이 전쟁에서 밀리고 있으며 동부에서
소련군이 독일영토로 진입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어.
그래서 소련군과 마주칠 때까지 어느 농가에
숨어 지내던 도중 드디어 소련군의
전차부대와 마주하게 됐지.
베얼하사는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를
흔들며 자신의 소속을 밝혔어.
농가에서 튀어나와 손을 흔드는 미친놈이
미국 군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소련군 동무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고
소련군 부대장은 자신의 부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했지.
그렇게 베얼 하사는 소련군 소속으로
다시 전장에 복귀하게 되었고
미국이 공여해준 M4 셔먼 전차를 운용하는
전차부대에 배치되어 전장에서 싸웠어.
그리고 자신이 갇혀있던 포로수용소로 직접
전차부대를 끌고가 수용소를 해방시키는
공훈을 세우기도 했다고 해.
이렇게 소련군으로 복무하던 베얼 하사는
독일 공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어
야전병원으로 후송됐고
자신을 구경하러 온 <게오르그 주코프> 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
베얼 하사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전해들은
주코프 햄은 그를 불쌍히 여겨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그를
보내도록 조치를 취했으며
모스크바에서 그대로 미국으로 복귀해
잠깐의 요양 후 고향으로 돌아갔고
본국 복귀 후 그의 기록은 전사상태에서
생존상태로 고쳐지게 되었다고 하며
그 직후 퇴역하게 됐지.
그의 본국 복귀 2주 후 고향 미시간에서
2차세계대전 종전소식을 접했고
1994년
백악관 만찬에서 만난 보리스 옐친으로부터
소련군 상등무공훈장 <적기훈장> 을
수여 받기도 했어.
그 후 28년간 선적 감독직으로 일해왔고
2004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
- 끝 -
여담으로 베얼 하사가 농가에서 마주친 소련군
전차부대 지휘관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전차장인 <알렉산드라 사무센코> 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베얼하사를 각별하게 챙겨주었으며 베얼 하사
또한 그녀의 밑에서 복무하며 그녀의 남편의 전사
소식을 직접 전달해주기도 하는 등의 가까운
사이였으나
시무센코는 베얼 하사가 본국으로 귀국 후 한달 뒤
아군 전차의 시야불량으로 깔려 사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