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여름, 당시 청나라의 지배하에 놓인 서몽골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스스로를 준가르의 마지막 통치자 '아무르사나ᠠᠮᠤᠷᠰᠠᠨᠠᠭᠠ'의 환생이라 자칭하고 자신이 곧 몽골을 만주의 멍에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외치며 반청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어.
안그래도 당대 서양 열강들에 의해 정세가 어지러운데 이로 인해 반청 운동까지 전몽골 지역에 확산될 것을 우려한 청나라는 우르가, 즉 오늘날 울란바토르에 나타난 그를 체포한 뒤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지.
러시아 영사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이름은 "아무르 사나예프"이고, 러시아 제국 시민권을 지닌 아스트라한 출신의 칼미크족 또는 도르베트족이었어. 소문에 따르면 그는 어릴 적 티베트로 보내져 수도승 생활을 했으나 승려를 모욕한 죄로 파문당하여 라싸를 떠났다고 하지.
이후 그는 카흐탸로 추방되었으나 또다시 1891년 가을 외몽골에서 모습을 드러냈어. 물론 청나라에 의해 블랙리스트로 찍힌 그는 다시 체포당해 추가 조사를 위해 울리아스타이로 이송되었고, 머지않아 풀려난 다음 러시아군에 의해 카흐탸로 끌려갔어.
이후로 그는 한동안 반청 운동을 전개하지 않았고 1910년까지 행방도 불분명해졌는데,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아마 러시아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 파계승 신분으로 중국 서부에 위치한 신장과 티베트, 차이담 분지 지역을 떠돌아다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이 터짐과 동시에 몽골이 독립을 선언하자 신장 카라샤르에 머물던 사나예프는 1912년 낙타를 타고 다시 몽골 땅으로 돌아왔어.
그는 몽골 호브드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병사들을 모집해 몽골에서 나가지 않고 끝까지 싸우기로 결정한 청나라 요새 내의 암반 및 휘하 청군과 첫 전투를 치뤘지. 승리는 사나예프가 이끄는 몽골군의 승리로 끝났고 그가 이끄는 몽골군은 요새에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약탈하고 청군 포로들을 학살해버렸지.
달콤한 첫 승리를 거둔 그는 더욱 기세를 몰아 청나라 군대가 남아있던 서몽골의 호브드, 울리아스타이, 울란곰 등을 해방시킨 다음 복드 칸국의 영역으로 흡수하는 전공들을 세웠어.
이에 크게 기뻐한 복드 칸은 그를 호브드의 군정장관으로 삼았고, 그와 동맹 관계에 있던 몽골 부족들은 수많은 가축과 목동들을 내주었어. 그렇게 그는 독립국 몽골에서 가장 강한 권력자 중 하나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로부터 '자 라마Жа лам'라는 칭호까지 얻어냈지.
호브드의 지배자 자 라마는 준가르를 잇는 새로운 오이라트 국가를 세울 목적으로 호브드 주민들에게 농업을 장려했고, 학교와 수도원을 짓거나 유럽식으로 군대를 훈련시키는 등의 개혁 정책들을 추진했어.
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보인다면 같은 몽골인이라도 봐주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그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울란곰의 승려들을 채찍으로 때려죽이고, 1년에만 100명의 귀족들을 살해하여 호브드를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어.
게다가 자 라마는 오이라트뽕에 심취한 나머지 몽골인이 아닌 타민족들을 적대하는 것을 넘어 사디스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어. 한때 준가르와 전쟁까지 치르던 카자흐 출신 죄수들의 가죽을 벗겨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지. 심지어 그에게 산채로 붙잡혀버린 "하이산"이란 이름의 불행한 카자흐 부족장은 아직 살아있었음에도 가죽이 벗겨지고 심장까지 적출당해 자 라마만의 종교 물품이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훗날 1914년 2월 8일이 되서야 자 라마의 게르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인피의 모습으로 시베리아 코사크들에게 발견됐지...
이런 끔찍한 만행들을 저질렀던 탓인지 그의 세상 또한 그리 오래가진 않았어.
마침 호브드 귀족들과 마찰을 빚고 있던 자 라마는 1914년 2월에 러시아 영사의 명을 받든 시베리아 코사크들에 의해 체포되어 다시 러시아로 송환되었어.
하지만 오이라트 재건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1918년 몽골로 다시 돌아왔지만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있던 터라 고비 사막에 숨어들어 남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지나가는 캐러밴 무리를 털어먹는 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갔지.
그렇게 1922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보낸 복드 칸의 사절로 위장한 경찰서장에 의해 야영지에서 사살당한 후 목이 잘려나갔고 남은 몸뚱아리는 불태워졌어. 당연히 남아있던 자 라마의 무리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짐으로써 그가 평생 꿈꿔온 오이라트 재건의 꿈은 영원히 끝나버리고 말았지.
몽골 정부는 그의 죽음을 대중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그의 머리를 처음엔 울리아스타이, 보드카가 담긴 용기에 담긴 채로 울란바토르로 옮겨졌는데, 머리는 검은 피부와 대비되는 하얀 머리칼 때문에 몽골어로 흰 머리란 의미를 지닌 '차강 톨코이Цагаан толгой'라는 별명이 붙었지.
이후 자 라마의 머리는 보드카 용기에 꺼내져 포름알데히드가 담긴 유리 용기에 넣어진 채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우편물로 보내졌고,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러시아 최초의 박물관 '쿤스트카메라Кунсткамера'에서 "몽골의 해골(№ 3394)"이란 이름으로 전시되어 러시아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박물관 전시물들 중 하나로써 영원히 고통받을 예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