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도 잘 알고 있는 인물 칭기즈 칸은 그야말로 몽골인들의 정신적 조상이다
몽골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봐도 무방한 인물인 만큼 당연히 칭기즈 칸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떠도는데
그 중에서도 '칭기즈 칸 후손 1700만명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국내 이런저런 언론 사이트에 비슷한 내용으로 떠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략적인 레파토리를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아시아(혹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같은 Y 염색체를 공유하는 남성이 n명이나 되는데, 이 공통된 Y 염색체의 조상은 칭기즈 칸일 확률이 크고 따라서 칭기즈 칸의 남자 후손은 n명이나 된다'
(이 n명 안의 숫자는 뉴스마다 1600만명이나 1700만명 등으로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건 많은 숫자)
그렇다면 이 논리와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위 논리와 주장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우선 저 기준(Y염색체)으로는 칭기즈 칸의 외손자/외증손자/외고손자...(생략) 등이 집계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딸이 아들을 낳았다고 '넌 친손자가 아니라 외손자니까 나랑 남남이다' 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모계를 통한 남자 후손도 엄연히 칭기즈 칸의 남자 후손인데, 저 기준대로라면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수의 사람들이 저 기준에서 배제된다
'모계를 통한 후손을 후손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은
'엘리자베스 2세는 무함마드의 후손이다'라는 주장이 떠돌 때 제작된 족보 중 하나로 대답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무함마드의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한 팩트체크는 제쳐두고, 보시다시피 무함마드와 엘리자베스 2세 사이에 많은 여성들이 중간에 끼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모계를 통한 후손이 후손으로 인정받지 못했더라면 위와 같은 족보가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
애초에 모계를 통한 혈연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무함마드의 후손' 자체가 현재 시점에서 실존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기준을 달리해서 볼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모계를 통한 후손을 제외하고 오직 부계만을 통한 후손만을 그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오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칭기즈 칸의 Y 염색체가 뭐 어디서 갑자기 칭기즈 칸 태어날때 '앗 이제 만들어져야지 뿅' 하고 만들어진것도 아니고
다 칭기즈 칸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생략) 로부터 물려받은 건데
칭기즈 칸의 후손이 아니면서 칭기즈 칸과 같은 Y 염색체를 가진 칭기즈 칸의 부계 남자 친척이 한 명도 없었을까?
당장 위키백과에 기록된 칭기즈 칸의 형제들만 찾아봐도 5명인데 그럴리가 없다
부계 남자 친척이 형제들만 있는 건 아니니 당연히 칭기즈 칸의 후손이 아니면서 칭기즈 칸과 같은 Y 염색체를 지닌 남성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고
칭기즈 칸과 같은 Y 염색체를 지닌 남성이 낳은 후손이 대대로 부계로 이어져 내려온다면 그 또한 당연히 칭기즈 칸과 Y 염색체가 같다
즉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이지만 칭기즈 칸과 Y 염색체가 같다고 해서 칭기즈 칸의 후손일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 그래도 전 세계의 0.5%씩이나 같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좀 그럴법한 이야기 아닌가? 싶을 텐데
고대 인류는 약 90만 년 전 전 세계 인구가 약 1,280명으로 줄어들면서 거의 전멸할 뻔했다고 합니다. 또한 초기 인류 조상들의 인구는 약 117,000년 동안 이 정도로 적은 인구를 유지했습니다.
애초에 현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 자체가 그렇게 큰 수준이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저 1280명 중에 남성이 대략 절반일테니 현재까지 내려오는 Y 염색체의 종류는 '많아봐야' 640개 가량일 것이다
이건 그마저도 저 640명 중에 Y 염색체가 겹치는 경우가 없다는 가정에 저 640개가 모두 단절되지 않고 내려왔다는 가정까지 더한 결과고
실제로 현재까지 내려온 Y 염색체의 종류는 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전 세계의 0.5%가 같은 Y 염색체를 가진 것도 뭐...
대단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고 상식 선에서 반박이 되는 이야기를 뉴스에 싣는 건 여러모로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