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최대 확장
일리야 레핀, 신병 배웅(1879년), 러시아 국립박물관
러시아 제국은 특이하게도 농노를 징병대상으로 포함했는데, 그 방식은 이랬다.
1년에 한번씩 러시아 전역에 징병령이 내려지며, 만 30세까지 징병대상이다.
시골 지역에는 징병관을 파견해 젊은 남자 농노들 중 추첨으로 1명씩 차출한다.
징병된 1명의 가족들은 다른 23명의 농노 가정이 평생 도와주어야 했다.
징병된 농노병은
표르트 대제시절에는 "평생복무"
1760년대에는 현역 25년
1860년대까지는 현역 20년 예비군 5년이었고
1880년대에는 현역 12년에 예비군 3년이었다.
만약 600루블을 낸다면 합법적으로 군면제가 가능했으며 일부 가난한 농노들은 평민 부르주아들에게 600루블보다는 적은 수백 루블을 받고 대신 복무해주었다.
당시에 수백 루블은 농노 가정으로써는 상상도 할수없는 거액이였기에 비교적 좋은 선택이였다.
복무기간 동안 살아남아서 고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입영 당일 징병자 가족의 집은 초상집이 되었다.
운좋게 무사 전역을 했다해도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지나치게 방대했던 탓에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귀향을 포기하고 그냥 복무지 근처에 정착해서 결혼했다.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 극동 연해주 등지의 도시들중에는 이렇게 형성된 곳들이 더러 있다.
당대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등의 단편소설에는 군대 간 아들이 죽었다는 전보 한줄만 받고 눈물을 흘리는 늙은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전근대 러시아 제국의 방대한 영토는 민초의 피땀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징집된 농노병들의 사기는 최악 수준은 아니였는데, 군인이 되지 않아도 어차피 농노에 불과할 뿐더러, 군대에서는 멀건 죽이 아니라 고기와 빵, 심지어 당시에 최첨단 기술이였던 보드카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심지어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황제인 차르를 예수의 지상대리자로 가르쳤기 때문에 최고사령관인 차르가 말 그대로 "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