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은 1차 대전 때 독일이 비행선으로 벨기에와 파리를 폭격하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고, 전간기에(1930년대 초반까지) 비행선의 군사적 활용을 연구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초대 미 해군항공국장 윌리엄 모펫 제독이다.
군필자라면 이런 의문이 들 만 하다.
"아니, 이미 1차 대전 말기가 되면 전술적인 가치를 상실한 비행선에 그리 집착하다니 그 양반 졸라 폐급 아니야?"
모펫이 항공국장이라는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항공 경험이 거의 없었긴 하지만 결코 폐급은 아니었다. 미국 공군의 아버지 헨리 아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 해군 항공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전투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워싱턴의 꼰대들이 군축이라는 명분으로 수 차례나 폐지하거나 육군 항공대에 통합하려 했던 해군항공국을 10년간 꿋꿋이 지켜내며 결국 항해국 다음의 중요 보직으로 자리잡게 한 장본인이었다.
모펫의 구상은 이랬다.
"열 대의 거대(USS급) 비행선 함대를 만든다. 각 비행선은 복엽기 4대를 싣고 다니며 하늘에서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이동식 격납고 역할을 한다."
(아, 그는 프로토스형 인재였던 것인가?)
아직 항공모함이 해전의 주역으로 떠오르지 못했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나름 혁신적인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군축에 눈이 벌개진 의회도 관련 예산을 승인했겠지. 그러나 이 발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날은 오지 않았다. 최초의 USS급 비행선 메이컨(Macon)호와 애크런(Acron)호의 건조 후, 직접 애크런호에 승선하여 대서양에서 훈련을 시행하던 와중 폭풍을 만나는 불운을 겪는다. 76명의 승무원 중 73명이 사망하는 전간기 미 해군 최악의 인명사고였다. 모펫 역시 사망자에 포함되었다.
모펫의 사망 후 2대 해군항공국장으로 임명된 이가 그 유명한 어네스트 킹 제독이다. 비행선의 군사적 활용은 킹에 의해 영영 폐지되었다. 추락하지 않고 남은 메이컨호는 전장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캘리포니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행거 원(Hangar One) 바로 옆에 있는 모펫 필드 역사 박물관(Moffett Field Historical Museum)이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