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난향
조선 후기
유일 1패 기생
1패 기생은 왕 앞에서만 유일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특급 기생
1패 기생- 왕실 소속으로 임금 앞에서 공연
2패 기생- 문무백관 또는 지방 양반들 앞에서 공연
3패 기생 -일반 상민들 앞에서 공연
그리고 몸을 파는 창기(娼妓) 여성들은
'작부' 또는 '갈보(蝎甫)' 라고 해서 따로 분류됐음
흔히 '술집 작부같은 X'
'이런 갈보X'라는 욕이
여기서 유래한 것
(참고로 황진이는 양반들만 상대하는
2패 기생으로 이난향보다 급이 낮음)
(3패 기생도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유지층 상민들만 볼 수 있어서 완전 하급은
아니였다고 함)
이난향은
대한제국 시절
순종의 전속 기생이었음
고향은 평앙인데
기생학교는 경성의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을 나왔음
(본래 이난향은 본명이 이선비로
평양 최대 물산 객주 아버지를 둔 부잣집 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기생의 길을 걷게 됨)
(위 사진은 평양권번 수업 모습)
당시 기생학교 투 톱이
경성의 조선권번
평양의 평양권번임
참고로
평양권번은 50년대까지
남아있었는데
백선엽 장군이
6.25 한국전쟁 때 평양 탈환 후
평양기생학교에 남아있는지 확인해보니
아직 평양 기생들이 남아있어서
탈환 축하주를 받았다는 회고를 한 바 있음
이때 평양 기생들이
백선엽 장군에게
"공산당 간부놈들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면서
인민들의 눈이 두려워 몰래 기생집 운영을 시키고
우리들 옷도 검은 색만 입게 한다"
"공산당 간부놈들은 오면
비싼 술과 안주만 쳐먹고 한번도 계산을 안한다"
등 공산당 욕만 계속하다가
백선엽 장군과 일행 군인들에게 준
축하주들을 기생들 본인들이 다 마셨다고 함
이건
당시 기생학교 수업시간표인데
기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했음
상대해야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대부호나 지식인 계층이었기에
그렇다고 함
특히
이난향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역사상 최고 미모
그리고 최고 실력을 가진 천재
일본 샤미센
가야금
심지어 피아노까지 잘 쳤음
게다가 조선 전통무용부터
서양 왈츠까지 모두 마스터했다고 함
이난향은 얼굴이
설리하고 빼박이라 더 유명함
설리처럼
이난향도 당시 여자 기준으로 장신인
165cm 였음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궁궐을 나온 이난향은
경성 최고 기생집이었던 '명월관'으로 스카웃되는데
이때 매주 이난향을 보러 왔던 지명 손님들이 위 2명임
이난향의 회상에 따르면
이광수는 올 때마다 취해있어서 얼굴이 붉었고
최남선은 덩치는 큰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는데
가끔 한마디하면 쇳소리가 나서 특이했다고 함
당신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매주 명월관에서 이난향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고 함
나중에 이난향은
20대 중반 나이에 본인이 졸업한
조선기생학교 최연소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이후 조선일보 기자와 결혼한 뒤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았음
이난향은 1970년대
사망 전 인터뷰에서
"기생의 삶은 부끄럽지 않았지만
딱히 권할 만한 삶도 아니었다"고 함
2. 김옥엽
평양권번(평양기생학교)
출신 중 제일 유명했던 기생
판소리와 가곡에 있어서 당대 최고였다고 함
특히 김옥엽이 부르는 수심가를 듣기 위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렸었다고 함
김옥엽은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김동인의 애인으로도 유명했음
3. 박온실
박온실은
평양기생학교 출신
우리나라 최초 미스코리아인
미스 조선 진 출신이기도 함
포미닛 전 멤버
남지현과 빼박 미모로도 유명함
박온실은
빼어난 미모로
거리를 지나갈 때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들이 많이
따랐다고 함
박온실이 눈웃음을 한번 흘려주면
감격해서 자지러지는 남자 팬들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음
4. 장연홍
평양기생학교 출신 기생
평양에서만 활동했고
거기서 넘버원으로 유명했음
당대 수많은 재력가들이
애첩으로 삼으려고 유혹했지만
단 1명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음
장연홍은 술과 웃음은 팔지언정
순결은 진정한 배우자에게만
허락하고 싶지만
이걸 지키기가 너무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고 함
원래 부잣집 딸이었는데
갑자기 집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14살에 기생학교를 들어가
기생이 된 슬픈 과거가 있음
23살 때 홀로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실종됨... 인줄 알았는데
위키백과 장연홍 항목을 보면
-1945년 광복을 맞이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마약으로 인해 얼굴이 많이 상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조선 최고의 미녀 기생이었기에 평양기생학교에서 다시 받아줬다
다른 기생들과 요식점을 차렸다
그러나 2년만에 문을 닫고 곧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
이렇게 적혀있음
5. 오산월
평양기생학교 출신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고
기생 활동명이 오산월이라는 것만
남아있는 신비의 기생
당시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기생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구매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제일 많이 팔린 엽서가
바로 오산월 사진 엽서였다고 함
6. 이옥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기생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데
'꽃 같은 내 순정' 이라는
가곡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음
지금의 여아이돌 같은 존재로
극성 남자 팬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아래와 같은 기사도 있음
1938년 6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전문학교 2학년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나왔는데
급우들의 말에 의하면 이 학생은 이옥란에게 반해
밤이나 낮이나 이옥란이 아른거려
이옥란을 사모하다가 이루지 못한 사랑에
그만 독약을 마시고 만 것이라고 한다
7. 윤채선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조선 전통무용의 실력자로 알려져있음
키가 무려 168cm로
당시 웬만한 남자들보다 컸고
매우 풍만한고 글래머한
서양 스타일의 육감몸매였다고 함
혹시
위에 언급된
조선 기생들의 자세한 삶이 궁금하다면
한효주와 천우희가 각각
조선권번 소속 기생으로 나옴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을 의미하는 한자어
그래서
기생에게는 암묵적으로
꽃 선물을 하지 않는
룰이 있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