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2003년 6월-
목회자를 꿈꾸던 김선일은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한 자금마련과 주된 목적으론 개신교 선교를 위해
미군 납품업체 "가나무역"에 1년간 계약직 통역사로 취업, 이라크로 건너가 일을 시작한다.
-2004년 5월 31일-
다음달인 6월 귀국 예정이었던 김선일은 당시 이라크인 직원 1명과 미군에 납품할 물건을 싣고 바그다드 서쪽 200㎞ 지점의 리브지(RIBGEE) 캠프를 떠나 바그다드로 귀환하던 중
팔루자 인근에서 IS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 테러집단에 의해 납치된다.
이 때 가나무역의 사장은 김선일이 피랍된지 수 일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데
황당한 것은 피랍 사실을 3주 동안 대사관에 신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현지 변호사를 대동해 교섭을 시도하는 무모한 짓을 벌여 교섭 골든 타임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
-2004년 6월 21일-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국이 유일신과 성전에 의한 김선일 피랍 사실을 방송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 납치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뒤늦게 자국민 납치 사실을 깨달은 정부와 외교부는 긴급 대응반과 대외테러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이라크로 긴급 협상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대응책을 준비중이었으나
유일신과 성전의 인질 석방 조건인 '한국군 철수 및 추가 파병 철회' 에 대해
1. 테러집단의 조건에 응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 가능성
2. 교섭 이후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질극 테러 다수 발생 가능성
을 우려하여
요구조건에 대해 거부 의사를 전달한다.
-2004년 6월 22일-
유일신과 성전은 대한민국 정부의 교섭 거부 의사를 전달받은 즉각
김선일을 참살, 도로변에 유기하였고
23일날 이라크 팔루자 지역 인근 도로에서 미군에 의해 시신이 발견된다.
여기서 유일신과 성전은 김선일의 시신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만행을 저질러 수습자를 대상으로 한 2차 테러를 기도했으나 다행히 불발된다.
-2004년 6월 26일-
김선일의 시신은 대한민국으로 옮겨진 뒤 고향 부산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