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구한말 대일 의병운동에 관해 다룰 때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사진으로
1907년에 극동 특파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영국인 종군기자 프레더릭 매켄지가 양평군에서 조우한 의병들을 촬영한 것이다.
<프레더릭 매켄지>
(더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참고: https://www.fmkorea.com/6146696300)
다만 어디까지나 해당 사진의 촬영지가 양평군으로만 특정된 상태였지 그 세부적 위치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었고
오직 사진의 뒷배경에 보이는 주변의 능선만이 정확한 촬영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의병들의 뒤쪽에 보이는 능선>
처음에는 매켄지가 양평읍에서 양수리로 가는 길에 해당 사진을 찍었다는 구절에 주목하여 전문가들은 촬영지를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로 비정해 왔고 향토사학자 이복재 위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향토사학자 이복재 위원(우)>
그러나 이복재 위원은 해당 지역을 수십 번이나 답사했음에도 촬영지와 비슷한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에 원점으로 돌아가 그는 다시 매켄지의 기록을 꼼꼼히 검토했고 그 결과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25일) 아침, 서울로 출발해 얼마 못 가 바위와 모래가 깔린 강변에 이르러 의병 부대와 만났다.
일본군으로 오인당해 기습을 받을 뻔했다가 위기를 모면하고 의병들을 일렬로 세운 뒤 사진을 찍었다."』
이복재 위원은 해당 기록을 토대로 2017년경부터 3년 동안 매켄지의 이동 경로를 샅샅히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훗날 한 인터뷰에서 술회하기도 했다.
『"반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매켄지 사진을 인쇄한 다음 계속 남한강 강가를 따라 산만 쳐다보며 돌아다녔다."』
그는 의병 사진을 손에 쥐고 지형을 하나하나 비교하고 능선과 봉우리까지 싹 다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
마침내 2020년 12월, 사진의 뒷배경과 완벽히 일치하는 지역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밝혀진 의병 사진의 촬영지는 바로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398-14번지 6번 국도변이었다.
(카카오맵으로 보기: http://kko.to/uVWWo6eYo)
비록 오랜 세월이 흘러 복토 등으로 인해 지형이 다소 변하긴 했지만 사진에 찍힌 주변 능선의 형태는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의병 사진 속 능선과 최근 사진을 비교한 모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평군에서도 오빈리 구역을 의병 사진의 촬영지로 공식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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