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미국은 메인함 사건을 구실로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USS 메인함을 파견했다. 그런데 메인함이 폭발해 261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현재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우연한 사고라는 것이 정설이다.
남미 식민지를 모두 잃고 몰락하던 스페인은 미국과 싸울 여력도 없었고, 먼저 공격할 이유도 없었다.
스페인은 탄약유폭 사고라 주장하며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50년 전부터 쿠바를 노리던 미국은 이 좋은 구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미국 정부는 스페인의 기뢰 공격으로 몰아 전쟁 여론을 부추긴 후, 쿠바 독립 지원을 명분으로 스페인과 전쟁을 일으켰다.
4개월간의 전쟁 결과, 사실상 미국의 속국 형태로 쿠바가 독립했고, 미국은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 태평양의 필리핀과 괌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미군이 괌을 점령할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6월 20일, 미군 순양함 USS 찰스턴함이 괌의 스페인군 요새에 13발의 포격을 가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포격이 명중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페인군은 공격이 아니라 예포를 쏜 것이라 착각했다.
그것도 예포 치고 꽤 많이. 즉, 아주 성대하게.
답례로 스페인군도 예포를 쏴야 하는데, 포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사절을 파견했다.
그랬다. 쿠바 전선 하나도 벅찼던 스페인은 지구 반대편 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괌에 주둔하던 스페인군은 2개월 동안 전쟁이 일어난 사실 자체를 몰랐다.
전쟁 중이란 사실을 점령하러 온 적군에게 처음 듣게 된 아주 황당한 상황.
괌에 있던 스페인군은 어차피 소규모였고, 전쟁 준비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저항 의지가 없었다.
(당시 상황도 엉망이었던 것 같다. 미군 수뇌부에서 점령 후 괌 요새를 파괴하라고 지시했는데, 요새를 확인한 미군 지휘관은 이미 심각하게 망가져서 굳이 파괴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스페인군 장교 2명과 병사 54명은 전투 없이 미군에 항복해 포로가 됐다.
그렇게 미군은 13발의 포격으로 괌을 점령할 수 있었다.
미군 포격이 명중했다면 전투가 벌어지고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아주 형편없는 명중률 덕분에 유혈사태 없이 평화롭게 괌을 점령할 수 있었다.
마리아나 제도의 원주민 차모로족도 이때부터 갈라졌다.
스페인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괌만 미국에 넘기고, 나머지 섬들(북마리아나 제도)은 독일에 매각했다.
북마리아나 제도는 1차대전 이후 승전국인 일본령이 됐다가, 2차대전 이후에야 미국령이 됐다.
(미국의 신탁통치 후 독립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이 미국에 편입되길 선택)
미국 정부는 마리아나 제도를 하나로 묶어 관리하고 싶어하지만, 양쪽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미국령(괌)과 일본령(북마리아나)으로 서로 싸웠던 역사가 있어, 같은 민족임에도 사이가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