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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2 02:22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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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나의 주인이신 왕이시여! 그(아지루)가 왕(파라오) 앞에서 '여러 나라에서 페스트가 번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지만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페스트는 없습니다.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비블로스의 왕 리브-잇다는 아무루의 왕 아지루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이집트의 힘을 빌려 아지루를 처리하고 싶었던 이 페니키아인 군주는 파라오에게 위와 같이 편지를 보냈지

 

비블로스 왕의 걱정은 이집트의 통치자가 아지루의 말을 믿고 그에게 원군을 보내지 않을까봐 하는 것이었는데 ...

 

사실 아지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 

 

실제 그 지역은 얼마 후 히티이트까지 덮치게 될 전염병의 온상이었지...

 

image.png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자 이제 히타이트로 넘어와서 

 

오늘의 주인공 무르실리 2세를 만날 텐데 

 

이 군주는 히타이트의 역대 지도자들 중 손꼽히게 강력한 왕으로 꼽히는 인물이야

 

하지만 뛰어난 군사 지도자였던 무르실리 2세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염병'으로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질병은 20년 이상을 미쳐 날뛰면서 

 

그 어떤 적보다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지...

 

image.png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그 병 때문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왕자들과 귀족들과 수천이 넘는 고위관리들과 장교들이 아버지의 편으로 넘어았지만 그들 역시 그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병은 하투샤국 마저 덮쳐 하투샤국 역시 죽어가기 시작했다. 나라는 오래도록 병에 시달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재앙...

 

그처럼 참혹하고 예측할 수 없고 또 막을 수도 없던 일과 관련하여 신들의 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고대인이 얼머나 되었을까?...

 

무르실리 2세는 그 재앙 앞에서 자칫 자신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발언까지도 하게 돼

 

"나의 주인이신 신들이시여. 당신들은 오셔서 투드할리야에게 저지른 아버지의 범행을 훗날 그의 아들에게 복수하시고..."

 

무르실리 2세의 아버지 수필룰리우마스 1세는 매우 뛰어난 명군이었지만... 그 형제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는데...

 

무르실리 2세는 이러한 전염병을 아버지의 범죄의 결과로 생각한 것이지...

 

통치자로서는 지나치게 솔직한(그리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을 것이야...

 

그러면서도 이 히타이트 왕은 상당히 현대적으로 전염병의 진짜 원인 및 그 확산에 상응하는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재구성 해

 

"제 아비가 이집트의 군대와 전차병을 쳐부수었을 때... (이집트의 왕비-투탕카멘의 아내 안케세나멘으로 유력하게 추정-는 히타이트의 왕자에게 청혼하였는데... 그러한 청혼을 받고 왕자 잔난자가 이집트로 향했지만 중간에 살해되었어... 이집트인들은 부인하였지만... 히타이트의 입장에서 범인은 명확했고 히타이트는 군대를 일으켜 이집트를 몰아붙였지만... 전염병이 그들을 집어삼켰으며... 수필룰리우마스 1세도 그 전염병으로 사망) 포로들에게 페스트가 퍼지기 시작하여 포로들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로들을 하투샤국으로 끌고 왔고 포로들은 페스트를 하투샤국으로 끌고 왔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하투샤국 안에는 죽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원인에 대한 굉장히 합리적인 추론과 함께

 

무르실리 2세는 아버지의 죄와 자신의 원죄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와 자신을 구별하면서 개인의 책임을 지적하기도 해

 

"나의 주인이신 신들이시여!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제 아비도 죄를 지어 저의 주인이신 풍우신(히타이트의 최고신 테슈브를 말함)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아비의 죄는 아들의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제 아비의 죄도 제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죄를 나의 주인이신 하투샤국의 풍우신과 나의 주인이신 여러 신들께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이제 아비의 죄를 고백했기에 나의 주인이신 풍우신과 나의 주인이신 여러 신들께서 마음을 달래시고 다시 저를 어여삐 봐주시어 하투샤국에서 페스트를 쫓아주십시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도도 도움이 되지 않았어

 

"... 벌써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하투샤국은 죽음이 지배하고 있고 페스트는 아직도 하투샤국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지 못하겠나이다. 영혼에 스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절망에 찬 무르실리 2세는 신탁을 물었고 꿈을 통해서 신들의 뜻을 알려달라고 간청했으며 

 

신들이 어떤 제물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어

 

그러나 모두 허사였지...

 

이에 그는 온갖 가능성을 다 동원했고 결국 히타이트에 있는 모든 신전에 호소를 했어

 

"그래서 저는 페스트 때문에 모든 신들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의 주인이신 신들이시여. 제 말에 귀 기울이셔서 하투샤국에서 페스트를 쫓아주십시오!'... 하지만 신들께서는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신들을 향한 무르실리 2세의 호소와 간청 즉 '페스트 기도문'은 히브리인들의 '욥기'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욥기에 비해 페스트 기도문이 훨씬 전대에 기록된 것이지만...

 

더 현대적인 관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무르실리 2세는 실제 역사상 있었던 이 전염병과 관련하여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깊이 회의하며...

 

스스로와 신들과 세계를 원망하는 모습도 보여 

 

물론 그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벌은 불가피한 경우라도 공정해야 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면 인간은 은총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무르실리 2세는 설사 그 자신에게는 은총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왕의 실수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는 은총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어

 

그리고 그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또한 신의 의무라고 보았지...

 

"종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주인에게 간청을 합니다. 주인은 종의 말을 경청하고 종을 어여삐 여깁니다. 그리하여 종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 줍니다. 종이 설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주인에게 죄를 고백하고 주인이 그를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주인은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주인에게 고백했기 때문에 주인은 마음을 진정하여 종을 처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주인이신 풍우신과 나의 주인이신 여러 신들께서는 제가 죄를 고백해도 화를 가라앉히지 않으셨습니다."

 

무르실리 2세에게 신들이란 전능하기는 하지만...

 

신이라고 모든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되며 요구할 수도 없는 법이었어

 

또한 그의 생각에 따르면 제물을 바칠 인간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신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지(기도를 바칠 인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주인이신 신들께서 하투샤국에서 페스트를 쫓아주시지 않는다면 빵과 음료를 바칠 사람도 다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들마저 죽는다면 나의 주인이신 신들께서도 빵과 음료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가족과 집과 군대와 전차병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제가 무엇으로 당신들 신들의 질서를 회복한단 말입니까?"

 

이 부분은 거의 협박처럼 들리는데... 마지막 문장은 특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어 

 

나라의 상황 뿐 아니라 신들 역시 "다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즉 무르실리 2세에게는 신을 포함하여 세상 그 자체가 엉망진창이 되었던 것으로...

 

따라서 모두 힘을 합해 세상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라 할 수 있지...

 

image.png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이 페스트 기도문은 

 

히타이트인들의 신앙의 기초가 된 상호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신을 보살펴주어야 하며 신들은 인간을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 이었다 할 수 있어

 

무르실리 2세는 그러한 관점에서 신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데...

 

그는 왜 히타이트인들이 이런 벌 중의 벌을 받아야 하는지 점점 이해할 수 없었고 

 

비록 겸손하고 순종하기는 했지만... 신들을 향해 항의해

 

또한 그는 신들이 아직도 뭘 원하고 있는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물었으며 이제는 그만하라고... 그 정도의 벌을 받을 만큼 인간이 그렇게 많은 죄를 저지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신들에게 끔찍한 놀이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호소하기에 이르지...

 

* 결론적으로 히타이트의 신앙은 인간적인 척도를 갖춘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어

 

image.png 전염병을 대하는 히타이트 왕의 자세

마지막 번외로 본문에서 등장했던 '페스트'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그렇게 번역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페스트는 모든 종류의 전염병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의학적인 의미의 페스트는 아니야...

 

안타깝게도 히타이트인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전염병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것은 이 병의 증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 다만 히타이트인들은 청결을 아주 중시하였고 배수시설도 훌륭했던 점을 감안하면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콜레라나 티푸스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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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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