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되는 음식 제품에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따로 있다.
유통기한은 주로 식품 따위의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은 공급자가 식료품을 포장 상태로 적절한 환경에서 유통하면서 안전성이나 맛 등 모든 품질이 유지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기간이다.
즉 유통기한은 '이 기간 내에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을 허가한다'는 뜻이지 '그 이후에 절대 먹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즉 유통기한 경과가 부패 시작일시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식품위생법을 따라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는 반드시 식품의 제조·가공업자가 제품의 원료, 제조방법, 유통방법 등을 모두 고려해 실험을 진행한 뒤 제품의 보존 가능 기간을 설정하여 이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 상의 보존 기간에 안전 계수인 0.8을 곱해서 유통기한을 설정하므로, 유통기한은 실제 식품의 품질이 유지되는, 식용 가능한 기간보다 약 30% 정도 더 짧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먼저 설명하고 비상식량, 보존식량으로써의 라면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지적인 재해 상황이라면 라면은 비상식량으로써 훌륭하지만
세계멸망급 재앙 상황에선 보존식량으로썬 끔찍한 식품이다.
몇일, 몇주일, 길어도 한두달 안에 정리가 되는 통상적, 국지적인 재해 상황에서 라면은 가격이 저렴하고 입수가 쉬우며 조리가 쉽고 맛이 좋아서 훌륭한 비상식량 일 수 있다.
(짧은 재해기간 동안 물이 떨어지지 않을것이고, 유통+소비 기한이 다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몇년, 몇십년간 외부의 도움없이 버텨야 하는 세계멸망급 재앙 상황에선 라면은 보존 식품으로서는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일반적인 라면의 유통기한은 5개월 남짓이고, 잘 보관한다면 몇개월 정도 더 섭취 가능한 상태를 유지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타협해도 1년~1년 반 남짓 정도밖에 보존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라면은 유탕면이여서 튀긴 기름이 산패해 먹을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생존기간이 장기적으로 길어지는데 식수를 주기적으로 얻을 수 없다면 물은 아주 귀중한 자원이 되는데, 라면은 끓이기 위해 물과 연료를 소모하고, 먹고 나서도 짜서 물을 추가적으로 마시도록 유발한다.
또 라면은 그 양에 비해서 비교적 부피가 커서 지속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평상시에 취미로 생존주의 보존식량으로 라면을 사서 비축하는건 자유지만, 불과 몇개월 후에 라면이 상하기 전에 모두 먹어치우느랴 고생하게 될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국산 좀비 영화인 "반도"나 "#살아있다" 등에서 컵라면이 식량으로 등장하는데
"반도"에서는 작중 악역 세력인 631부대가 컵라면과 참치캔 등을 비축해놓고 특별한 날에만 가끔 불출하는 모습으로 연출되는데, 작중 시점이 멸망후 4년이 지난 시점이므로 참치캔은 멀쩡하겠지만 라면은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다.
#살아있다에서 나온 진라면 컵라면 모습, 의외로 이 장면은 의외로 PPL이 아니라 감독이 넣고 싶은데로 넣은 장면이라고 한다.
"#살아있다"에서는 주인공이 하나 남은 진라면 컵라면을 끓어먹는 장면이나 여주인공과 꽁냥거리며 짜파구리를 끓여먹는 장면으로 연출 되었는데
좀비 사태가 비교적 일부 지역에서만 국지적으로 발생한 상황이고, 기껏해야 일이주, 한달 남짓 지난 시점이므로 라면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수도가 끊겨서 물이 부족해지는데 라면을 먹는다는건 현명하진 않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