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가 단순히 과일만 섭취하지 않고 원숭이나 영양 등의 동물을 적극적으로 사냥하는 기회주의적 포식자이기도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른 유인원들의 식성에 대해 알아보자면, 침팬지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보노보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원숭이와 다람쥐를 사냥하는 등 육식 행위를 한다는 점이 2008년에 보고되었고, 고릴라는 그 거대한 배에서 볼 수 있듯이 식물성 먹이를 소화하기 위해 길어진 장을 가진 초식동물이며 가끔 흰개미 등의 곤충들을 섭취하는 정도가 보고되어 왔습니다. 인간은 다들 아시다시피 잡식동물이고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대형 유인원인 오랑우탄은 어떨까요?
오랑우탄은 주로 과일을 먹는 동물로 먹이 활동 시간의 57~80%를 과일을 찾는 데 보냅니다.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과일들을 먹으며 심지어는 알칼로이드 스트리크닌을 함유한 일부 과일종 또한 섭취 후 분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로 선호하는 과일은 무화과와 리치 같은 핵과(외과피, 육질의 중과피, 씨가 있는 내과피로 이루어진 열매) 종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섭취하는 건 나뭇잎인데요, 먹이 활동 시간의 약 25%를 차지하며 과일이 부족한 계절에는 이 비율이 더 증가합니다. 그 외에도 곰팡이, 곤충, 꿀, 새알, 나무껍질 등도 식단에 포함됩니다
이제 글의 주제인 척추동물 포식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제대로 된 최초의 오랑우탄의 척추동물 포식 기록은 우타미와 반 호프가 메모를 남긴 1997년인데, 이후 2009년, 2012년까지 수마트라오랑우탄이 영장류의 일종인 늘보로리스를 포획해 포식했다는 사례가 9건 보고되었습니다
(야행성 영장류인 늘보로리스. 겨드랑이에서 독 분비물을 내뿜는 특징이 있다)
(Utami와 van Hooff가 설명한 사례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케탐베(Ketambe) 연구 지역의 늘보로리스 사냥 위치)
유인원 연구가 매들린 E. 하두스(Madeleine E. Hardus)의 2012년 논문이 가장 자세한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평균적인 사냥은 수마트라오랑우탄이 나무에서 떨어진 늘보로리스를 때리면서 시작됐고, 오랑우탄이 늘보로리스를 붙잡아 두개골을 물어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섭취 순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보통 머리를 먼저 먹고 내장, 팔다리 순으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또한 논문에서는 오랑우탄의 늘보로리스 사냥 행위가 익은 과일이 부족한 계절에 발생하므로 고기는 오랑우탄의 보충 식품일 것이라고 하며 관찰한 결과 야생 침팬지가 고기를 섭취하는 것보다 2배 이상 느리게 고기를 섭취했는데 이는 주로 과일을 먹으며 단독 생활을 하는 오랑우탄과, 육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무리지어 사는 침팬지와의 습성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침팬지의 먹이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의미이지요
흥미로운 점은 어미와 새끼 사이에 고기를 나누는 상호작용 부분입니다
아직 완전히 젖을 떼지 않은 6~7세의 어린 오랑우탄 Yeni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 오랑우탄 Yet이 늘보로리스를 첫 번째로 사냥했을 때 새끼가 처음 12분 동안 늘보로리스를 먹으려고 시도하지 않자 입에서 입으로 먹이는 행위를 포함해 11차례 음식 나눔이 이뤄졌습니다. 두 번째 사냥에서도 비슷하게 새끼가 처음 20분 동안 늘보로리스를 먹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나, 세 번째 사냥에서는 엄마가 식사를 시작한 지 몇 분 후에 아기는 늘보로리스의 일부를 먹었다고 합니다. 오랑우탄은 어쩌면 부모로부터 늘보로리스가 음식임을 인식하도록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위 사례들은 수마트라오랑우탄의 사례들이며, 보르네오오랑우탄의 최초의 척추동물 포식 기록은 벤자민 J. W. 버클리(Benjamin J. W. Buckley)의 2015년 논문입니다. 보르네오 섬 중부 칼리만탄의 사방가우 이탄 습지림에서 수컷 성체 보르네오오랑우탄이 말꼬리다람쥐의 시체를 먹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보르네오오랑우탄도 늘보로리스를 포식을 한다는 것이 크리스타나 파린터스 마쿠르(Kristana Parinters Makur)와 스리 수치 우타미-아트모코(Sri Suci Utami-Atmoko)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보르네오 섬 중부 칼리만탄의 카푸아스 지역에 위치한 투아난 오랑우탄 연구 기지에서 관찰된 내용으로 성체 암컷과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플랜지(두꺼운 뺨 패드)가 없는 수컷 보르네오오랑우탄이 늘보로리스를 사냥해 포식하였는데, 이 개체는 암컷과 새끼가 고기를 가끔 구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눠주기를 거부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오랑우탄의 척추동물 포식 행동을 정리해보았는데 꽤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습니다. 침팬지가 사냥감으로 붉은콜로부스를 특히 선호하듯이 오랑우탄도 늘보로리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참고 논문:
1)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BF02740195
2)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764-011-9574-z
3)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SICI)1098-2345(1997)43:2%3C159::AID-AJP5%3E3.0.CO;2-W
4)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329-015-0487-x
5)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329-021-009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