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 동북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은 원래 한적한 시골이었으나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는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세운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러시아풍 건물과 문화로 가득했고, 그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동방의 모스크바, 동방의 파리 라는 별명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하얼빈은 근대 동아시아 최대의 다민족, 다문화 도시이기도 했는데, 중국인이나 일본인, 한국인, 퉁구스계 민족 뿐 아니라 러시아 제국과 함께 유입된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벨라루스인,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타타르인, 폴란드인 등 수많은 민족의 공동체가 있었다.
러시아 제국이 건재할 때까지만 해도, 하얼빈의 주인은 러시아인이었다. 1913년 인구 조사에선 러시아인의 수가 중국인보다 많았고, 일본인들은 러시아인들의 가정부, 미용사, 노동자, 창녀로 일했다.
적백내전으로 하얼빈에는 대규모 백군 난민들이 유입됐는데, 그 결과 하얼빈에는 러시아 법원, 시 정부, 군대, 자체적인 학교 및 여가 시설 등이 나타났고 이 시기 하얼빈은 러시아어만 알아도 아무 문제 없이 생활이 가능했다. 1920년대 후반 ~ 30년대 전반까지 하얼빈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6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이 때부터 러시아인들의 고난이 시작된다. 먼저 중국 정부가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자 하얼빈 전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러시아인들은 훨씬 저임금을 받아도 일하던 중국인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서 대다수가 실직했다. 소련이 세워진 후, 소련 국적을 취득한 러시아인들은 어느 정도 삶이 나아졌다. 하지만 소련 국적 취득을 거부한 무국적 러시아인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이 때부터 일부 러시아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매춘이나 스트립 쇼 등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섹스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다
1920년대 하얼빈에 대한 홍보서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하얼빈에 왔으니 섹스를 해야겠다."
"하얼빈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는 중국인 매춘부가 있습니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하얼빈에는 9개의 매춘 업소가 있는데, 평균적으로 5-6명의 러시아 여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유명 유흥가인 팔레르모에서는 섹시한 러시아 여자들이 허벅지와 엉덩이가 드러나는 속옷을 입고 춤을 춥니다."
실제 하얼빈에 살았던 러시아인의 회고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묘사가 나온다.
"... 귀족 의상을 입은 소녀의 춤이 손님들을 즐겁게 했다. 이 소녀들은 모두 한 때 상류층이었던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이제는 이 일만이 중국인과 경쟁하지 않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몇몇 소녀들은 벌거벗은 몸을 간신히 가린 채로 힘차게 탭댄스를 추고 있다."
1923년 출판된 오쿠노 타미오의 소설, '하얼빈 밤의 이야기'.
"전 세계에 하얼빈만큼 성욕을 찬양하는 도시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낮에 저녁을 기다리고, 저녁에 이르면 어둠을 기다리고, 밤낮을 기쁨으로 밝히고 있다." (내용 중)
만주국 수립
만주국 수립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더 많은 일본인 이민자들이 하얼빈에 유입되었다.
1934년에 출판된 '하얼빈 최신 안내서'를 포함, 일본에서 하얼빈에 관해 발매되는 거의 모든 엽서, 가이드북, 여행 기록에는 '알몸의 춤'(하다카 오도리, 즉 스트립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본 내지에는 스트립쇼가 없었으므로, 하얼빈은 일본인들이 유일하게 스트립쇼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또 '하얼빈 최신 안내서'에는 매춘을 다룬 페이지가 있었는데 여기서 일본인과 중국인은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진을 넣었지만, 러시아 여자들은 반나체 상태였다. 당시 러시아 여자에 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간호사, 의사, 미용사, 재봉사, 교사, 작가, 가수, 배우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던 러시아 여자들이 많았음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민족 고정 관념이었다. 이런 이미지로 일본은 '백인을 지배하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했다.
그러나 만주국이 세워지고 러시아인 사회는 지속적으로 쇠퇴했다. 소련 국적을 취득해 다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던 러시아인들은 상하이, 미국, 호주 등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러시아 영화 백작 부인에서. 이 영화는 상하이의 러시아 무용수들의 삶을 묘사했다.)
거기에 일본이 스트립쇼와 매춘 업소를 단속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스트립쇼에서 팬티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스트립쇼가 금지됐다. 이 조치로 매춘이나 스트립쇼에 종사한 가난한 러시아인들조차 상하이로 떠나버렸다. 물론 그래도 암암리에 스트립쇼가 몰래 진행은 됐지만 이전만 못했고, 전처럼 대놓고 하얼빈의 '섹스 관광'을 홍보하기도 어려웠다.
(성 산업 단속 후에도 러시아 여자들은 꾸준히 엽서 및 홍보물에 함께 실렸다.)
러시아 사회의 붕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에서 반서구 감성이 확산되자 일부 사람들은 하얼빈의 러시아인을 두고 '백인을 지배하는 일본'의 모습을 연상했다. 러시아인에 대한 억압 및 일본에 대한 종속화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하얼빈에서 러시아 문화는 더더욱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이후 일본이 패망하고 만주국이 해체되면서, 지역의 러시아인들은 제3국으로 이민 가거나, 소련으로 끌려 갔다. 오늘날에도 중국에는 1만 명의 러시아인이 있고, 소수민족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 존재감은 미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