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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의 서울살이] 한국군과 북한군을 비교해보니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2-24

(13년전 기사, 디지털 전투복 보급이 막 시작되던 시기로, 개구리 전투복이 아직 대부분인 시점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함.)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처럼 남북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가장 고생하는 것이 군인들이죠. 북쪽 군인 중에서도 라디오로 남쪽 방송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은 한국군의 생활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사실 여기보다 더 추운 북쪽에서 근무 서느라 떠는 군인들을 생각하면 안쓰럽습니다. 저도 겨울 근무 서봐서 아는데 사실 옷을 따뜻하게 입는 것보다 배가 든든한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도 배고픈 고생 정말 많이 했는데 사람이 배가 고프면 머릿속에 온통 먹는 생각만 떠오르죠. 어느 사택에 가서 농태기와 안주를 사서 먹으면 정말 명절이 따로 없겠건만 돈은 없고, 외상도 당기기 힘들면 정말 괴롭죠. 제가 여기 국군 생활을 말씀드리면 배고픈 와중에 더 배고파져서 견디기 힘들지도 모를 테니 양해해 주십시오.

 

여기 군대는 이밥에 기름진 국은 당연하고, 매끼 고기반찬, 남새반찬, 김치가 풍족하게 배식됩니다. 닭튀김이나 오리불고기 같은 인기 반찬인 경우 좀 더 먹고 싶어 하는 병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나머지는 이밥조차 그냥 돼지먹이로 막 버려지니 너무 아깝습니다. 배부르다고 밥을 남기니 육군참모총장이 최근엔 음식물 다 먹기 운동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한 달 동안 음식을 매일 1인당 60그램 이하로 남기는 부대에는 일인당 구이용 돼지고기 300그램씩 상도 준답니다.

 

국군의 평일 식사는 인민군 명절 급식보다 훨씬 좋습니다. 인민군대가 제일 잘 먹는 날이 설날이나, 2.16, 4.15, 4.25 같은 때인데, 아무리 명절이라도 병사가 고기로 배를 채우는 일은 절대 없죠. 어쩌다 중대에서 돼지 한 마리 잡아도 대대 군관들부터 내려와 줄줄이 빼돌리니 병사들은 돼지가 장화신고 건너간 기름 몇 방울이 뜬 국물이나마 차례지면 황송하죠. 그렇다고 군관들도 잘 먹는 것도 아니고, 그들도 돼지고기 몇 점 뜬 국을 먹는 수준이죠. 이런 명절조차 배부르지 않는 병사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국군은 하루 3끼 외에도 간식이 또 엄청 많이 나옵니다. 식사 후에 우유, 찹쌀떡, 아이스크림, 과일주스, 사이다 이런 것들을 나눠줍니다. 여긴 병실을 내무반이라고 하는데 입구에 사과와 귤을 잔뜩 쌓아두고 들어가며 나가며 마음대로 집어 먹습니다. 그리고 1명당 한 달에 물 부어 먹는 라면은 2개, 쌀국수 2개, 건빵 3봉지씩 나옵니다. 대체로 라면은 빨리 없어지지만, 쌀국수나 건빵은 먹는 사람만 먹고 안 먹는 사람은 계속 쌓아둡니다. 어떤 병사는 건빵 먹기 싫어서 사물함이나 차 안에 숨겨두었다가 들켜서 욕먹기도 합니다. 또 생일이면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촛불을 켠 크림 케이크도 받습니다. 완전히 행복에 빠져 사는 거죠.

 

요즘 한국은 쌀이 남아돌아 예전엔 군용 라면과 건빵을 밀가루와 보리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쌀로 만듭니다. 여긴 보리 값보다 쌀값이 훨씬 눅습니다. 군용 건빵 안엔 별사탕도 들어있는데 함께 먹어보니 너무 맛있습니다. 일반 시중 과자는 너무 달거나 바삭바삭해서 북쪽에서 벽돌과자에 습관 된 나에겐 잘 맞지 않는데 여기 군용건빵은 단맛도, 딱딱한 정도도 적당하고 해서 돈 주고 사먹는 어느 과자보다 맛있더군요. 군용이라 민간에서 팔지 않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여기 병사들은 월급을 받는데, 입대하자마자 이등병 때는 65딸라 정도 받고 이후 반년에 한번씩 승진할 때마다 월급이 올라가서 제일 높은 상병이 되면 85딸라 정도 받습니다. 사실 2~3천 딸라씩 받는 일반 노동자들 월급과 비교하면 너무 작지만 부대에서 먹고 싶은 것을 사먹기엔 충분합니다. 여긴 각 부대 안에 PX라고 하는 군인전용 상점이 있는데, 여기 가면 라면, 피자, 스파게티, 냉동만두, 닭꼬치 아무튼 자기가 필요한 것은 다 사먹는데 사실 먹는 것보단 담배 사는 데 돈이 더 듭니다.

 

그뿐입니까. 10년 넘게 공식 휴가는 한두 번밖에 못가는 인민군대와는 달리 여기선 고작 2년을 복무하면서 입대 70일 만에 집에 첫 휴가를 보내고, 소소한 휴가는 다 빼고도 반년에 한 번씩 열흘씩이나 집에 보냅니다. 반년마다 열흘씩이요. 인민군 병사가 와 보면 이건 완전히 천국이 따로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생활만 다른 것이 아니고 요즘 젊은이들 평균키가 175㎝쯤 된다고 하는데, 부대에 가보면 정말 잘 먹어서 체격들이 운동선수 뺨칩니다. 요즘 북에선 못 먹어서 키 140㎝부터 초모한다는데 국군과 인민군의 아무 부대나 무작위로 뽑아서 줄 세우면 아이와 어른들이 서 있는 것 같을 겁니다. 저는 처음에 여기 군인들이 고생 모르고 자라 그래도 정신력만큼은 북쪽이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남남북녀란 말도 있지만, 의외로 남쪽 청년들이 애국심도 강하고 아주 용감하더라고요.

 

누구는 조금 남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건빵 몰래 갔다 버리면서 군 생활하고, 누구는 조금 북쪽에서 태어난 죄로 늘 굶주림과 싸워야 하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 현실입니까. 지금 인민군 병사들의 할아버지 때부터 배고픔과 싸워가면서 조국이라고 지켰는데, 아들 대에는 키가 한 뽐이나 줄어들어선 허약과 싸우며 앉으나 서나 먹을 것만 생각하는 더 기막힌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인민군은 지금 외세의 침략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을 스스로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나라가 지금보다 몇 배로 더 잘살고 할 말 마음대로 하고 사는 그런 날을 목숨 바쳐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방송이 끝난 뒤에 내가 총을 들고 지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성하 기자

 

함경북도 청진시 근처 동해안 어촌 마을 출신, 평양고사포병사령부 57mm 대공포 부대 근무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영문학 / 학사) 출신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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