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남자 수도회로는 최초로 한국에 진출한 이후로, 독일 성 베네딕도회 선교 신부들은 많은 기록 사진을 남김.
2000점에 이르는 그 사진들은 독일에 있는 연합본부 격인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돼 있었는데,
최근 한국 천주교(한국교회사연구소)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공동 조사해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이란 화보집으로 발간함.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몇점을 본 게시물에서 소개하려고 함.
(원래는 흑백사진인데 일부는 컬러로 복원함)
가사를 입은 불교 승려들
천주교 신자 가족
갓을 쓴 남자들
천주교 신자 아이들
강변 풍경
논갈이하는 농부
겨리쟁기를 쓴 한우
경복궁 경회루
굴레를 쓴 아기를 업은 소녀
아기를 안은 여인들
농촌 기와집
꿩 사냥꾼
방한모를 쓴 여성과 어린이들
담배 피는 노인들
농기구를 갖춘 농가
다리미질 하는 여인들
조선 옷을 입고 곰방대를 든 선교사 신부들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
결혼식에서 독상을 대접받는 신부 친구들
산간 마을
농촌 풍경. 조선 말기는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말을 탄 독일 신부와 조선인들. 과하마라는 표현이 딱 맞다
수녀(머리에 흰 모자를 쓴 여성들)와 어린이들
천주교 신자라서 묵주를 든 새 신부와 들러리
바닷가마을
혼인 중인 신랑과 신부.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장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25년 찍은 무성영화에 등장한다
베버 신부가 무성영화 찍는 모습을 구경하는 동네 주민들
어린이들
북한산에 오른 총각들
북한산성 모습
안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주고 사형 전 고해성사를 집전해준 빌렘 신부와 안 의사의 형제들.
함경도 일대를 관할하던 원산대목구장 사우어 주교(가운데)와 신자들. 사우어 주교는 6.25전쟁 직전 북한 공산정부에 의해 수감돼 반년 동안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다 죽는다
척박한 산에 오른 남성
상복을 입은 선교사. 서양인 신부들은 낯선 외모와 말투를 숨기기 위해 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엄격한 유교국가인 조선에선 상 중인 사람에겐 감히 말을 걸지 않았다
마을을 지키는 장군들
장례를 치르는 상주
지금의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다.
사진기를 보고 미소 짓는 소녀들
소녀와 어린이들
개구장이 같은 신학교 학생들
베네딕도회가 독일식 기술공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숭공학교 학생들
시장 풍경. 맨 왼쪽에 여성이 가슴을 드러낸 것은 아들을 낳았다는 상징이다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두 아들
경기도 안성 아양동 석조보살
썰매타는 신학교 학생들
안중근 토마스
장옷을 입은 할머니와 손주들
소녀
경운궁 운교 아래로 지나가는 전차. 운교는 왕만 이용할 수 있는 다리였다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돈의문)
시장 풍경
순종과 영친왕 사진 엽서
출처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홈페이지
이건 베버 신부가 찍은 100년 전 우리나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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