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제국이 망하고 사방에서 야만족들이 몰려왔고
로마인들 중 일부는 이탈리아 본토를 떠나 야만족들로부터 그나마 안전한 이탈리아 북동부의
석호 지대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기점이 됩니다.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로마의 행정구역 명인 '베네티아'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은 찬란한 위용을 뽐내지만 당시 로마인들이 막 정착하기 시작했을 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환경이 너무 안 좋아 정착했다가도 다시 이탈리아 본토로
돌아가버리는 로마인들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100여 년 이상 사람들이 정착하고 개간하며 점점 도시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고 어족 자원도 풍부한 데다가
염전 산업에도 조건이 좋아 소금을 수출하며 점점 더 경제가 성장하였고 양질의 물고기는 베네치아 인들의 중요한
식량이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지리적 이점도 잘 살려 여러 차례의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병사들을 수송하여 뱃삯을 받고 수송선이나 군량을 제공하며
막대한 이득을 취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지중해의 교역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고 십자군 원정대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으며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취하기도 하는 등 매우 활발히 성장을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 문화권, 즉 유럽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아주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군사력의 핵심은 해군이었는데, 지중해 전역을 커버하는 거대한 비지니스망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선 대규모의 해군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15세기까지 유럽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해군력으로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 연합해군의 승리를 이끈 주역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군이었는데, 기독교 연합군 함대 208척 중 무려 106척이 베네치아 공화국 해군의 함정이었으며
베네치아의 해군은 오스만 제국 함대를 철저히 유린하여 기독교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일 강점은 경제력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제패권을 잡고 있을 땐 베네치아의 화폐였던 두캇은
유럽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으며 거의 모든 유럽 대륙의 도시에서 통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 인도까지 다달았던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에서 베네치아의 두캇 화폐가 통용되고 있던 걸 목격할 정도였습니다.
초기 베네치아 공화국을 일으켜 세웠던 제염업도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삼국시대일 때 베네치아에서는 아주 획기적인 생산 메커님즘을 고안했는데, 여러 개의 염전을 만들고, 펌프와 수문으로 각 염전을 연결한 후
각 염전에서 물이 증발되어감에 따라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지면 다음 단계의 염전으로 보내 단계적으로 제염을 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연료 소모가 없어서 생산비용도 다른 생산법들에 비해 훨씬 낮았습니다.
또한 베네치아는 언론의 자유가 높은 곳이었습니다. 여러 장르의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16세기 중반 베네치아 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출판된 책의 1/3 이상을 찍어냈을 정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