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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쿠마르(Anil Kumar)

 

이 사람은 세계 넘버원 컨설팅 회사로 유명한 LG전자를 말아먹은 걸로도 유명한 맥킨지 앤 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선임 파트너이자 이사였던 스타 경영 컨설턴트 인도계 미국인 아닐 쿠마르임. 인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그 천하의 맥킨지에서도 단연 에이스로 꼽히던 인물로, 1986년 맥킨지에 입사한 이래로 쭉 출세가도를 달려왔던 사람.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맥킨지의 회장(MD)을 지냈던 같은 인도 출신의 선배이자 멘토였던 라자트 굽타(Rajat Gupta)와 함께 맥킨지의 성장을 이끌었던 장본인이기도 함.

 

쿠마르는 1958년 인도 마드라스 지역에서 태어났음. 출신 성분도 꿀리지 않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음. 공부머리가 실로 대단하다고 어린 시절부터 널리 알려졌는데, 인도의 엘리트 학교로 유명한 둔 스쿨(The Doon School)을 졸업한 직후 그 경쟁률 높기로 악명이 자자한 IIT(인도공과대학) 시험에서 인도 전국을 통틀어 100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캠퍼스인 IIT 봄베이로 진학해서 이 곳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무려 3등이라는 대단한 성적으로 졸업함.

 

더 대단했던건 졸업 직후 그 당시 IIT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로즈 장학금과 함께 영국의 명문 공대로 유명한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고, 또 동시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MBA 과정 합격 통지서도 받았음. 하지만 두 학교에서 모두 공부를 하고 싶었던 쿠마르는 와튼스쿨 쪽에 입학 유예를 요청했고, 이에 와튼스쿨 쪽에서는 1년간만 유예를 허락함. 그리고 쿠마르는 영국으로 날아가서 2년간의 대학원 과정을 단 10개월만에 끝내고 무려 수석으로 졸업한 직후 다시 미국으로 가서 와튼스쿨 MBA 과정까지 싹 다 마침.

 

그렇게 2개의 석사 학위를 취득한 쿠마르는 휴렛 팩커드(Hewlett-Packard)에서 잠시 프로덕트 매니저로 근무한 뒤 1986년, 맥킨지 앤 컴퍼니로 옮겨서 경영 컨설턴트로써의 삶을 시작했음. 입사한 지 2년이 지난 후 쿠마르는 맥킨지의 새로운 지사를 실리콘밸리 근방에 설립하는데 기여하면서 사내에서 주목을 받게 됐고, 파트너였던 상사와 둘이서 일하던 캘리포니아 지역 오피스의 규모를 4년 만에 15배 이상 키워내면서 능력을 입증함. 그리고 1993년에는 입사 7년만에 파트너를 달고 조국인 인도로 가서 뉴델리와 뭄바이 지역에 오피스를 개설했고, BPO와 KPO 등 아웃소싱 방식을 처음으로 인도에 적용시켜서 큰 성과를 내며 인도계 선배이자 당시 막 CEO로 자리를 잡던 라자트 굽타와 함께 맥킨지의 리더격 인물로 떠오름.

 

이후 굽타의 최측근이자 맥킨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게 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많은 명성을 얻었음. 맥킨지의 핵심으로 당시 떠오르던 닷컴버블 행진에 올라타서 무지막지한 실적을 냈고, 뉴욕과 보스턴 지역에 비하면 하찮아보이던 실리콘밸리 오피스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맥킨지 전체 매출의 25%에서 30% 가까이를 차지하게 됨. 이걸 지휘했던 사람 역시 당연히 쿠마르. 2000년대 들어서도 쿠마르의 위세는 대단했고, 굽타가 2003년을 마지막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맥킨지 최고의 스타는 여전히 쿠마르였음. "지식경영 전도사", "맥킨지의 간판 스타", "천재 경영 컨설턴트" 등 쿠마르를 상징하던 수식어는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이었고, 쿠마르는 한 달에 무려 3만 마일을 여행해야했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음.

 

그의 출세가도를 만들어준 실리콘밸리 오피스부터 시작해서 회사의 핵심 지역인 뉴욕 오피스, 그리고 당시 떠오르던 시장인 아시아 지역까지 매번 왔다리갔다리하면서 일처리를 해야했기 때문. 핸드폰도 3개를 두고 지역별로(아시아/유럽/북미) 나눠놔야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잘 나갔는지 대충 느낌이 올 거임. 실력에 걸맞게 부도 어마어마하게 쌓았고, 몇백억에 달하는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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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없이 견제와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성격이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는 부분은 맥킨지 내부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부분으로, 일례로 또 다른 맥킨지의 스타 컨설턴트였지만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한 도미닉 바튼(Dominic Barton)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었음. 하지만 성격이 그런 것을 떠나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고,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후배들도 많았던데다가 쿠마르의 성과와 업적은 누구나 다 인정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전혀 아니었음. 

 

그러나 2009년 10월, 일이 터짐.

 

당시 미국 10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알려진 갤리언(Galleon)의 수장이었던 스리랑카계 미국인 라지 라자라트남(Raj Rajaratnam)의 내부자거래 문제가 터졌던 것임. 펀드매니저였던 라자라트남이 기업 내부의 정보를 이용해서 거래를 해왔다는게 사실로 드러나면서 파장은 무지막지하게 커졌고 그 중에서도 같은 와튼스쿨 동문이었던 맥킨지의 선임 파트너 아닐 쿠마르는 라자라트남의 VIP 5명 명단의 인물 중 한 명이었음. 알겠지만 맥킨지는 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컨설팅 펌으로 고객의 수가 매우 방대함. 그런데 그런 회사의 핵심 인물이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경영대학원 동문 친구한테 돈을 받아가면서 고객이었던 기업의 고급 정보를 흘려줬던 셈.

 

여기에는 쿠마르 뿐만이 아니라 그의 멘토인 라자트 굽타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당시 굽타는 맥킨지에서 퇴임한 후 골드만삭스와 P&G 등 세계 최고 기업들의 사외이사로 낭낭하게 돈을 벌고 있었음. 근데 그 와중에 워렌 버핏이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라자라트남에게 넘겨주는 등 범죄 혐의가 적나라하게 포착이 됐고, 결국 조사를 받기에 이름. 쉽게 말해서 맥킨지의 커다란 발전을 이끌었던 두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내부자 거래로 인해 범죄자로 추락했던 형국이었고, 당연히 맥킨지 쪽에서도 팔짝 미치고 뛸 노릇이었음. 간판격 인물들이 저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가담했다는게 드러났으니, 맥킨지의 브랜드 가치에 전혀 도움이 될 일이 없었기 때문.

 

처음에 맥킨지 내부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 때는 "에이... 설마 그렇게 존심 쎄고 명예를 중요시하는 양반이 그깟 푼돈 벌려고 그 짓 했겠어?"라는 반응이었지만 실제로 쿠마르는 대략 25억원 정도를 지불받고 라자라트남에게 정보를 준 것이 확인이 됐음. 그것도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렸다는 사실까지 모두 드러나면서 명성에 치명타를 입었음. 이후 재판이 진행되면서도 미국 다수의 언론이 의아해했던 부분은, 그렇게 명예를 중요시하면서 높은 명성과 인기, 그리고 엄청난 부까지 쌓았던 양반이 도대체 왜 그 푼돈을 받아가면서 비윤리적인, 클라이언트한테 배신을 때리는 짓이나 다름없는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였음.

 

쿠마르는 실제로 재산이 한화로 대략 700~800억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연봉도 당연히 25억원보다 훨씬 더 많았음.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도 유명했던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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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본인도 내부자거래를 걸렸다는 것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던지, 체포되던 그 순간 실신해서 머리를 다치기도 했음.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월가에서 사건 처리로 유명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함. 그러나 사건->재판이 연이어 진행되면서 쿠마르는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지경에 이르었음. 재판에서 져서 돈을 뜯기고 투옥되는 대신 친구인 라자라트남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 아니면 모든 것을 불고 재산도 나름 지키고 장기간의 감옥행도 피하는 것.

 

쿠마르는 후자를 선택하고 정부와 딜을 하기로 결심했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미 검찰 측에 넘겨줬고 덕분에 뉴욕 검찰 측은 너무나도 쉽게 라자라트남을 조질 수가 있게 됐음. 뿐만 아니라 그의 선배이자 멘토, 스승인 라자트 굽타 역시도 쿠마르의 배신(?) 혹은 딜 덕분에 라자라트남과 같은 신세로 탈탈 털리게 됨. 쉽게 말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의 평생 멘토와 친구를 버렸던 셈. 그 결과 라자라트남은 무려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아 끌려갔고 라자트 굽타 역시 3년간 감옥에서 살다가 2016년 출소함. 반면 쿠마르는 보호관찰 2년으로 땡침.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것은 앞서 쓴 것처럼 "대체 왜?" 쿠마르가 저 짓을 벌였느냐임. 쿠마르는 이를 두고 법정에서 "탐욕으로 인해 불거진 타락"의 과정이라고 설명했음. 결국 쿠마르는 라자라트남의 유혹에 넘어가서 푼돈을 받기 위해서 위험한 짓을 감수하다 자신의 모든 명성과 멘토, 그리고 친구를 잃었고 동료들과 업계 지인들, 그리고 후배들로부터 받던 존경까지 다 잃게 됨.

 

여러모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음.

 

누구에게나 20억원 가량의 돈은 큰 돈이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서 20여년간 쌓아왔던 세계적인 명성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날려버린 전직 스타 컨설턴트 아닐 쿠마르. 만약 내가 저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드는 인물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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