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발생 직후 기내의 마지막 사진 - 산소마스크가 내려가 있다.)
'일본 최악의 비행기 참사,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
탑승인원 524명, 사망자 520명, 생존자 단 4명인 비행기 사고사에서도 역대급 피해규모로 알려진 사건
(실제 사고나기 직전까지의 JAL123편의 블랙박스 음성)
이미 해당 사건은 유명하니, 사고 원인이나 이유 등은 넘어가고 해당 사고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왜 일본 측에서 즉각 구조를 하지 않았는가?
이다.
실제 일본구조대는 해당 비행기의 추락 이후 14시간 이후인 오전 9시가 되서야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문제는 추락 당시 비가 내리고 있어 추락한 기체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고,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추락 현장에 생존해 있었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잔해 속에서 죽어가던 희생자들의 비명 소리가 밤새 지속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생존자 상당수가 비가 내리는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일본 정부측의 입장은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자위대 헬기 조종사가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한 것이 일본 정부가 늑장 구조 작업을 결정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추락 직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많았고 헬기 소리가 들렸을 때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헬기는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 돌아가 버렸다.
(처참한 사고의 현장)
여기서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 것은 "왜 14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구조를 하지 않았는가?" 이다. 실제 사망자들 가운데 생존해있다 저체온증으로 죽은 사망자들도 나타났었고 생존자의 증언도 존재하였다. 심지어 이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미군이였다.
추락 확인 직후, 미 공군의 C-130 수송기가 탐색에 나서 20분만에 기체를 찾아냈으며, 탐색 구조 헬기가 2시간 후에 기체 추락 현장에 도착했다. 즉시 가장 가까운 주일미군 기지인 요코다 기지에 경보를 발령했고 주둔 중인 미 해병대는 구조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허가를 요청하였지만
구조 활동은 자위대의 책임이라며 거절하고 탐색 구조 헬기의 이탈을 요구했다. 당시 미군측의 요청은 '우리가 당장 달려가서 구조를 개시하겠다'가 아닌 '많은 부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사태이니 의료반과 헬기를 준비해두었다'였다는 모양이고 이에 자위대 측은 '감사한다. 대기 바람.'이라 답했을 뿐이라는데, 사고 직후 미군의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던 것도 사실이고 이 헬기가 구조 활동을 개시하기 직전에 상관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라는 당시 구조 헬기 승무원의 증언이 있으며 이 사실에 대해 함구령까지 떨어졌다.
(사망자의 마지막 유서 중 일부)
도쿄 공항에서 자위대측에 구조대 파견 요청을 한 것은 비행기가 추락한 후 약 2시간이 지난 시점. 이유는 '정확한 추락지점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구조 요청을 낼 수 없다.'였다.
그나마 123편에 문제가 생겼다는 정보는 추락 이전부터 자위대측에 전해진 상태였고, 덕분에 자위대의 대책 본부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개설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항공 자위대의 탐색 구조 헬기가 추락 후 1시간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해당 헬기의 전문 분야는 해상구조였고 적외선 장비 등의 야간 구조 장비를 탑재하고 있지 않아 생존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철수.
덧붙이면 자위대의 제1공정단장이 사고 지점의 야간 강하를 제안했지만 울창한 수목 지대상의 야간 강하는 극도로 위험했기에 기각당했다. 이 제1공정단장은 정부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독자적으로 부대를 움직였기에 모반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훗날 좌천되었다.
(사망자 유서 중 일부)
미국측의 도움도 거절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정부의 늦장 구조는 "왜 바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다큐까지 나올 정도로 비난의 대상이였으며 아직까지도 미스테리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