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화집이란 사람이 오찬석의 집에 판매한 쌀 1두(8kg)의 값을 받으러 갔다가,
오찬석의 며느리가 옆집의 신여화와 간음하였다는 소문을 교인 박재명 등에게 들었다고 말해주면서
자신이 소문을 내면 오찬석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하였다.
격분한 오찬석이 안화집을 구타하여 기절시키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은 사건이다.
1899년 9월 11일 문의군수 윤영구의 사건처결 보고서와 오찬석 자문 도자도(吳瓚錫自刎刀子圖) 5척(尺)을 첨부하였다.
복검(覆檢)도 초검(初檢)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개요와 조사 경위를 먼저 적고 관련자들의 심문 · 증언 내용을 차례로 기술하였다.
마지막에 복검관(覆檢官) 목천군수 정철조의 1899년 9월 21일 사건 처결 보고서 및 오찬석 자문 도자도(吳瓚錫自刎刀子圖) 5척을 첨부하였다. (자문 도자도(吳瓚錫自刎刀子圖) :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는데 사용한 칼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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