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2월 31일
난중일기는 현충사에 전시되고 있었는데 범인들은 저녁에 철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서간첩, 임진장초, 충무공유사 등 10가지 책을 훔침.
수사가 진척이 없자 대통령이 1968년 1월 8일 문화재 도난 특별 담화로 "1월 17일까지 난중일기를 찾지 못하면 전 수사 기관을 동원하여 범인을 체포 엄벌하겠으며 범인 스스로 뉘우쳐 자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면 그 죄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에 붙이고 난중일기의 행방을 알려주는 시민에게는 특별 상금을 주겠다"는 내용.
바로 다음 날인 1968년 1월 9일 한 어린이의 제보로 범인들은 부산에서 체포, 난중일기는 '일본으로 유출되기 직전' 회수.
난중일기는 고추장 항아리 속에 비닐로 포장되어 숨겨져 있었고 신고자는 공범의 조카였음.
주범은 유근필.
당시에 37세, 무직 1966년에 통도사에서 동은사마법병을 훔쳐내 재벌 이 모씨에게 팔아넘긴 혐의로 9개월 징역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였다.
이들은 절도 전에 현충사 전시관을 답사하였고 난중일기를 일본에 가져가 1천만원 정도에 판후 나눠갖기로 모의했다고 함.
1967년의 1천만원은 2018년 기준 3억750만원.
국보급 중요 사료를 고작 인당 5천만원도 안 되는 돈에 팔아버리려고 한 셈.
이 일이 있은 후 정부에서는 50부의 영인본을 만들어 전국에 보냈고 원본은 열람이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