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6일에 방송된 역사스페셜 「추적!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되지 못하나」
묘비의 내용중 일부만 공개됨. 이 묘는 발해국 순목황후의 묘로,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임.
전체 141자이고, 다 해석했지만, 공개된 내용은 발해국 순목황후, 간왕 황후 태씨 라는 내용 뿐이라고 함.
(저 자료 보면 뒤에 또 ""로 쌓여 있는 부분이 있는데 중국어 모르는 나는 뭐인지 모르겠음.)
이 묘에서 발굴된 금제 관장식은 고구려의 새를 의미하는 장식품을 계승함.
이 묘의 구성은 고구려의 묘를 계승함
이렇듯 발굴된 부장품 및 묘의 형식을 보면 고구려를 계승한 것을 알 수 있음.
중국이 발해를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신당서"에 나와 있는 위의 내용 때문임.
말갈족 을 중국의 부족으로 생각함.
우리나라가 발해를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구당서"에 나와있는 위의 내용 때문임.
고구려를 계승한 민족.
중국 역사교과서를 보면 고구려는 세계사에 들어가지만, 발해는 자국역사에 들어가 있다고 함.
고구려를 계승하는 모습이 확인한데도 당나라 왕에게 책봉받은 지방정권이기에 자기나라 역사라고 주장.
고구려 멸망 당시의 인구구성비는 잘 모르겠으나,
신당서에 써 있는 당시 인구의 숫자를 보면 69만호, 편하게 계산하면 70만호에 1호당 5명씩이라고 계산하면
350만명 정도의 인구였다고 생각해보고,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 몽골, 신라로 떠난(혹은 끌려간)인구가 대략 30만명이라고 하면
고구려땅엔 아직도 300만명 이상의 고구려 유민이 남아 있는 것임.
(적은 수의 고구려 유민 + 대다수의 말갈인 이 아니라 대부분이 고구려 유민이었을 것으로 추측)
교과서에 세계사에 등장하는 나라(고구려)가 멸망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나라(발해)가 국사로 들어오게 되는 현상이 발생함.
그 이외에도 다른 내용이 나오는데
상경에서 발견된 궁터 중 제2궁전의 구조를 보게 되면
총 19칸짜리 궁전인데, 그 당시 당나라의 궁전은 11칸으로, 당나라보다 더 큰 구조로 지어짐.
발굴한 학자도 예법에 어긋난다고 언급함.
11칸을 넘어가는 건물은 당나라엔 없음. 최대가 11칸.
하지만, 저 19칸 짜리 건물과 비슷한 구조가 있는데,
고구려 안학궁
안학궁의 제2궁전도 19칸 으로, 상경에 있는 궁전은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이라고 생각됨.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계속 지방정권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몇십년 전부터는 아니고 요 근래 라고 함)
학생들은 대부분 저렇게 생각하고 있음..
이게 2011년 방송된 내용인데
이 다음 이야기 알고 있는 펨창들 있으면 썰좀...